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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소통의 기술

입력
2015.02.0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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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진 청약제도 개편과 재건축 연한 완화 등 정부의 부동산거래활성화 대책들에 힘입어 올 들어 공격적인 신규 분양 아파트 공급에 나섰던 건설회사들은 갑자기 갈림길에 우뚝 멈춰선 기분이다. 지난 연말 언론과 여론이 일제히 전세제도의 종말을 예고하면서 임대시장의 지각변동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급기야 정부가 설익은 임대시장 대책들을 내놓는 통에 분양에 집중할지, 아니면 임대주택으로 역량을 돌려야 할지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정부는 연내 ‘뉴 스테이’라는 이름의 중산층을 겨냥한 기업형민간임대아파트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입장이지만, 건설사들 가운데 이를 따르겠다고 확실히 손을 든 곳은 드물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기업형민간임대주택 정책 발표 며칠 전 예정되어 있던 건설사 대상 정부 주관 간담회 자리가 당일 갑자기 취소되어 어리둥절한 적이 있다”며 “건설사뿐 아니라 정부 기관들끼리도 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건설사 세금 혜택에 대한 이견들이 봉합되지 않은 채 발표되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미흡한 소통 탓에 피해는 서민에게도 미치고 있다. 집을 사야 할지, 임대에 머물러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수고는 온전히 집 없는 서민들의 몫이다.

최근 경기도 의회가 새로운 부동산중개보수(수수료) 체계를 소비자가 아닌 중개사들에게 더 유리한 ‘고정요율화’로 몰아가면서 재차 정부의 소통부실이 어떻게 서민의 삶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당초 국토부가 매매보다 임대 거래 시 더 많은 수수료를 내야 하는 비상식적인 시스템을 손질하기 위해 지난해 수수료체계 개편안을 확정하면서 중개사들의 불만을 그대로 둔 채 지방의회로 공을 넘겼고, 급기야 중개사들의 표심을 걱정하는 지방의회가 정부 방침에 역행하는 쪽으로 움직인 것. 한 중개사는 “정부의 수수료 개편안 관련 간담회 전날까지 정부안의 주요 내용을 간담회 패널로 참석하는 인사들에게 전달하지 않는 등 국토부가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익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시장에 미칠 영향을 가늠했다면 부동산중개보수 고정요율화의 빌미는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연말정산 파동으로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정부의 소통 기술 부족이 빚어낸 생채기가 역력하다. BC카드 등 대형 신용카드사들이 대중교통 소득공제 정보를 누락하면서 근로자들이 연말정산 서류를 다시 챙기는 수고를 한 배경에는 대중교통 종목지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혼선이 있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중교통 종목으로 지정한 35개 업체 외 신설회사에 대해선 카드사가 대중교통이 아닌 일반카드사용액으로 잡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줬고, 이를 따르다 보니 문제가 빚어졌다”고 했다.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받았다는 카드사측은 여신금융협회 명의로 이 내용이 각 사에 전달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국세청의 말은 다르다. “(카드사들과) 간담회를 가졌을 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는 것. 가이드라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정부의 부정확한 의미전달이 이 같은 소동에 일조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책을 실행하고 입안하는 데 있어 민간기업, 이익단체, 나아가 국민과 불안한 소통을 이어가는 정부의 모습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소통부실로 인한 사례들을 쉬 넘길 수가 없다.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최대 원인은 다름 아닌 ‘소통부족’이었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했던 사랑의 요체 중 하나는 ‘응답할 수 있는 준비’이다. 만일 프롬이 ‘소통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책을 쓰더라도 이 대목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을 사랑하는 정부라면 언제라도 의문과 이견에 대해 ‘응답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소통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의 수첩은 본디 이를 위해 준비된 도구라고 믿고 싶다.

양홍주 경제부 차장대우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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