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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예멘의 봄… 통일 25년 만에 재분단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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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예멘의 봄… 통일 25년 만에 재분단 위기

입력
2015.02.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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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반군, 과도정부 체제 2년 통치

걸프지역 첫 반미 시아파 정권 탄생

예맨의 시아파 반군 후티가 꾸린 '혁명위원회'의 의장 무함마드 알리 알후티(맨 오른쪽)가 7일 수도 사나의 한 경기장에서 열린 후티 지지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사나=AP 연합뉴스
예맨의 시아파 반군 후티가 꾸린 '혁명위원회'의 의장 무함마드 알리 알후티(맨 오른쪽)가 7일 수도 사나의 한 경기장에서 열린 후티 지지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사나=AP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최근 쿠데타에 준하는 정변을 일으킨 예멘 시아파 반군 후티가 결국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정부를 전복하는데 성공했다. ‘아랍의 봄’이 예멘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는커녕 걸프지역 현대사 최초로 ‘반미 시아파 정권 탄생’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AP통신은 후티가 6일 TV 중계를 통해 임시 헌법을 선포하고 기존 의회를 해산, 551명으로 된 새 의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후티는 또 지난달 22일 사퇴 의사를 의회에 밝힌 하디 대통령을 대신해 후티의 안보·정보 조직 ‘혁명위원회’가 2년간 과도정부 체제로 통치하겠다고 밝혔다.

혁명위원회는 새 의회의 구성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손에 넣게 됐다. 혁명위원회 의장은 후티의 지도자 압델 말리크 알후티의 사촌인 무함마드 알리 알후티다. 후티는 기존 내각을 해산하고 임시 국방장관과 내무장관도 임명했다.

34년을 통치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가 아랍의 봄 영향으로 2012년 2월 하야할 당시만 해도 예멘은 민주화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잔존한 장기 독재의 뿌리를 끊어내지 못하면서 민주주의 정착은 요원해졌다. 혼란한 정국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은 하디 대통령은 확실한 지지 기반이 없는 외톨이였다. 의회 301석 중 238석을 차지한 다수당 국민의회당(GPC)은 여전히 살레의 막후 조종을 받았고, GPC는 끊임없이 하디 정부를 흔들었다.

시아파 반군 후티가 정부 전복에 성공하면서 예멘은 통일 25년만에 남북 재분단의 위기에도 처했다. 제2의 도시 아덴시를 중심으로 분리·독립을 추진해 온 남부 분리주의 세력에게 정통성이 결여된 후티의 ‘쿠데타 정권’ 수립은 여러 면에서 좋은 명분일 수 있다. 아덴시는 1990년 예멘의 남북 통일 이전 남예멘의 수도였다. 후티는 사나와 정부 의회를 장악하긴 했으나 중남부의 수니파와 이와 연계된 예멘 알카에다(AQAP) 세력에 막혀 남부까지 세력을 확대하지 못했다.

예멘은 인구의 30% 정도인 시아파가 권력을 장악해 나머지 70%에 해당하는 수니파의 불만을 사왔다. 다수 수니파의 근거지가 중남부인 만큼 종파간 갈등도 남북 재분단의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8일 “합법적인 정부인 하디 대통령이 복귀해야 한다”며 “후티의 정부 전복과 이로 인한 정부 공백으로 예멘의 상황이 매우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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