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전문지식 사회 위해 쓸 것"

“30여년의 형사 경력과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지존파 사건’ 수사로 이름을 알린 고병천(66ㆍ사진) 전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반장이 퇴임 5년 만에 범죄학 박사로 거듭났다.
8일 광운대에 따르면 고씨는 지존파를 사례로 한 논문 ‘범죄단체 구성원의 행동패턴에 관한 연구’로 최근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지존파 사건은 1993년 두목 김규환을 포함한 조직원 6명이 지나가는 행인 등 5명에 대해 엽기살인 행각을 저질러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범죄였다. 당시 서초서 강력반장이었던 고씨는 이듬해 9월 이들을 검거한 뒤 유치장에서 동거동락하며 조사를 이끌었다.
논문은 이때의 경험으로 작성한 것이다. 논문은 지존파 조직원 6명의 행동패턴을 조직 내 위치 및 역할에 따라 ‘리더형·추종자형’, 계획성 여부에 따라 ‘계획형·우발형’, 범죄 방식의 특이성에 따라 ‘창의형·모방형’으로 각각 분석했다. 고씨는 “지존파 사건은 수많은 범죄 중 하나지만, 지존파 조직원들의 행동패턴을 파악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면 범죄 프로파일링(범죄유형 분석기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4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고씨는 경력 대부분을 형사분야에서 보낸 정통 ‘형사통’이며 2009년 혜화경찰서 청문감사관(경정)을 지내다 퇴임했다. 바쁜 형사 생활에도 고씨는 2002년 한성대 마약학과 석사 과정에 진학했고, 5년 뒤에는 자신의 삶과 경찰에서의 경험을 담은 수필집 ‘어느 난쟁이의 우측통행’을 펴내기도 했다. 퇴임 후인 2012년 광운대 범죄학과에서 학업을 재개한 고씨는 이달 24일 졸업장을 받는 것으로 3년 만에 박사과정을 끝마친다.
그는 학위 논문과는 별개로 1년여 전부터 전국 교도소 15곳의 재소자를 설문조사하면서 ‘중대 범죄자들의 범죄 소인(素因)’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특성이 선천적인지, 환경적인 것인지 밝혀내는 것이 그의 목표다.
고씨는 자신의 경험과 전문 지식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한 달 전부터 미제 살인사건 피해 유족을 돕는 ‘미제 사건 포럼’ 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포털사이트에서 개설해 운영 중이다. 고씨는 대학에서 만난 동문 등 7명과 함께 유족들에게 사건 해결을 위한 자문을 하고 있다. 자문료를 받지 않는 재능기부다. 고씨는 “아직 초기 단계라 미흡한 점이 있지만, 뜻을 같이 하는 전문가가 늘어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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