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 첫 중국 공연
中관객ㆍ교민 1600석 극장 메워
"음악 웅장하고 군무 인상적"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에 이토 히로부미가 도착했다. 일곱 발의 총성이 울린 후 안중근 의사의 만세 삼창이 이어졌다.
7일(현지시각) 밤 9시 30분. 똑같은 장면이 하얼빈 환구극장 무대 위에서 재현됐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다룬 뮤지컬 ‘영웅’이 중국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자리였다. 관객들은 안 의사로 분한 배우 강태을의 만세 삼창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커튼콜이 끝나고 배우가 무대를 떠난 뒤에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현지 관객과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영하 20도의 강추위에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에도 1,600석의 대극장은 중국인과 교민들로 가득 찼다. 중국어 자막을 제공한 한국어 공연에 관객들은 눈과 귀를 집중했고 중국어 대사로 처리한 만두가게 장면에서는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뮤지컬 ‘영웅’은 12명의 항일투사가 ‘단지 동맹’을 맺은 시점부터 안 의사가 사형을 선고 받고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를 그린다. 2009년 초연 이후 7차례 무대에 올라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 받은 작품이다. 익숙한 내용인 만큼 그간 한국 관객은 음악과 군무에 초점을 맞춰 감상했지만 이번 공연의 중국 관객은 안 의사의 일대기 자체에 큰 관심을 표했다.
신문 광고를 보고 남편, 딸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는 리우시앙(39)씨는 “안 의사에 대해 조금밖에 몰랐는데 뮤지컬을 보고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됐다”면서 “조국을 위해 몸을 바쳤다는 점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순빙(46) 하얼빈공대 교수는 “예전 사람들이 평화를 갈망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며 “군국주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형 뮤지컬의 매력에 감탄하는 관객도 많았다. 뮤지컬 관람이 처음이라는 장줘어(59)씨는 “음악이 웅장하고 군무가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듣고 보러 왔다”며 “과거 이야기를 아름답게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중국어를 가르친다는 멍셩아이(30)씨 역시 “한국 배우들의 연기와 표현이 매우 훌륭했다”며 “이렇게 수준 높은 뮤지컬을 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첫 중국 공연인 만큼 옥에 티도 있었다. 핀 조명이 제자리에 정확히 떨어지지 않거나 클라이맥스에서 전체 조명이 흔들리는 등 몇 차례 조명 실수가 있었다. 이에 대해 제작사 에이콤인터내셔날의 황보성 대표 프로듀서는 “음향과 무대세트 등은 한국에서 가져왔지만 조명은 환구극장의 것을 쓰다 보니 빚어진 실수”라고 밝혔다. 자막과 대사가 어긋나는 등 무대 외적인 실수도 눈에 띄었다.
음향은 생각보다 좋았다. 뮤지컬 전용 극장이 아닌 데다 극장 사정상 라이브가 아니라 녹음한 반주음악(MR)을 써서 우려가 컸지만 배우들의 대사 전달과 풍성한 악기 소리 구현에 큰 문제가 없었다.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이자 이날 공연을 총괄한 윤호진 연출은 “안 의사 순국 105주년과 광복 70주년에 하는 공연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며 “특히 안중근기념관 개관 1주년을 맞아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때 공연을 올리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하얼빈역 안에 개관한 안중근기념관은 지난해에만 12만명이 찾았다. 윤 연출은 “하얼빈시의 허가 문제, 장비 운반과 스태프 체류 문제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밀어붙인 결과 무사히 공연을 올릴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환구극장의 뮤지컬‘영웅’은 8일 두 차례 더 공연 후 4월 14일~5월 3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무대에 오른다. 중국어 버전으로 다시 중국을 찾는 것도 협의 중이다.
하얼빈=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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