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에게 먼저 웃음을 건네는 일이 근래 들어 참 쉽지가 않다.
길거리든 어디든 스치는 인연들이 있으면 오해 받지 않을 수준의 잔잔한 미소를 건네며 편안한 눈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요즘엔 그게 통 어렵기만 하다. 아니 두렵다는 것이 더 맞으려나. 아무튼 이럴 때는 캔맥주 몇 개 부여잡고 추억의 바다에 빠져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몇 해 전 캄보디아 한 국제구호기관의 자원활동가로 도시빈민촌과 시골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무료사진관을 운영하던 때의 어느 날이다. 때마침 대구 파티마 병원 의료진들의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해 수도인 캄보디아에서 버스로 약 4시간 정도 걸리는 깜뽕톰 시내의 한 성당에 머물고 있었다. 전날까지는 며칠 동안 이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오지마을인 깜뽕꼬에서 가난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족사진을 찍어 주며 한껏 웃음꽃을 피우고 온 참이었다. 한국 의료진의 무상진료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임시진료소인 성당으로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시골 사람들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얼굴 표정도 대부분 어둡고 서로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대부분 가난한 도시빈민들이어서 그런지 어깨에 드리워진 고단한 삶의 무게가 꽤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애써 털어내면서 자꾸 실실거리는 눈인사를 건넸다. 확실히 눈을 마주치고 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배시시 웃는 화답이 달려 나온다. 그 느낌이 참 생생하게 좋으면서도 고마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지만 설령 마주해도 애써 외면하기 십상이다. 쳐다봤다는 이유로 멱살을 잡거나 더 큰 폭력사태로 번지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못 되는 세상이다. 같이 따라 웃어주면 참 좋다. 서로 가지고 있는 긴장감도 무뎌지고 친밀감이 뒤를 잇기 마련이다. 분명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큼 서로의 존재감을 제대로 확인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일손이 부족한 탓에 간간히 맥박이나 혈압을 재서 진료카드에 기록하는 일을 도와주면서 나는 즉석카메라와 포터블 소형프린터를 들고 다니며 계속 주민들과 낯빛을 교환했다. 찾아온 모든 환자들에게 사진 한 장씩은 꼭 나눠 줄 요량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사람들 틈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한 아이가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질끈 감았다 뜬 내 눈이 맞는지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처음엔 키가 작은 아이가 그냥 어디에 앉아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양쪽 팔과 양쪽 다리가 모두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내 당혹스런 시선을 봤다면 너무도 미안했을 터였다.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이 옆으로 다가섰다. 동정심이 아니었으면 했지만 사실 아예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모른 체 자리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고 이름이라도 묻고 싶었다. 다가가서 땅바닥에 같이 철퍼덕 앉아 아이와 눈높이부터 맞춰보았다.
“하이! 꼬은(꼬마야) 니악 츠모 어이?(이름이 뭐니?) 크념 츠모 찐!(내 이름은 진이야)” 깜짝 놀란 멀뚱거리던 아이는 살짝 웃으며 내게 답을 해주었다. 자신의 이름은 ‘또이 쏙떵’이고 나이는 이제 열 살,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뒤에 있던 쏙떵의 어머니는 아들이 지닌 장애가 아무 문제될 일 없다는 표정으로 아들의 어깨와 손을 주무르며 마냥 웃기만 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양팔과 양다리가 없이 태어났고 이날 여기를 찾아온 이유는 특별히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이마에 난 작은 상처를 치료하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쏙떵은 나를 비롯한 어른들 앞에서 글자를 써보기도 하고 어머니의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 통화도 하면서 지루한 대기시간을 달랬다. 신기한 표정의 주변 어른들이 자꾸 이것저것 시키는 게 귀찮지도 않은지 다 따라 하며 웃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쏙떵의 얼굴에 그늘이 크게 보이지는 않았다. 꾸준히 관심을 주며 웃는 나를 의식했는지 내게도 살짝 화답의 미소를 던져주기도 했다. 나는 속떵의 키보다 보다 훨씬 낮은 눈높이로 카메라를 내려 두 모자의 환한 모습을 한 컷 찍어 건네주고 몸을 일으켰고 내 가슴에 기분 좋은 무엇인가가 묵직하게 담겨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살며시 웃음이 얼굴에 번진다. 굳어있는 얼굴 근육을 풀고 이제 다시 웃고 볼 일이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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