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다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당정은 협의체를 구성해 건보료개선기획단이 이미 마련한 안을 토대로 상반기 내로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소득층 부담을 줄이고 고소득 직장인의 부담은 늘리는 게 개편안의 핵심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올해는 개편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밝힌 지 열흘 만에 원점으로 회귀한 셈이다. 무책임과 무소신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문 장관이 개편안 백지화 방침을 밝힌 것은 발표 하루 전이다. 하지만 계획을 바꾼 배경에 대한 분명한 설명도 없었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며칠 만에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감면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물러섰다. 고소득층에 대한 건보료 부담 없이 저소득층 감면만 해줄 경우 건보료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게 뻔한데도 당장의 비난만 피하자는 심산이었다. 뒤늦게 새누리당이 수습에 나서 개편안을 더 미루지 않겠다고 나선 게 그나마 다행이다.
불과 열흘 사이에 건보료 개편안은 발표 예정→사실상 백지화→부분 개편→원점 재추진 등 몇 차례나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개편안이 왜 중단됐는지, 왜 다시 추진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고 책임지는 이도 없다. 그저 문 장관이 “발표 과정에서 혼선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 드린다”는 한 마디가 전부다. 이번 건보료 파동은 국정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고 정부의 기강을 허문 중대한 사태다. 건보료개선기획단장은 1년6개월 동안 추진해온 개편안이 무산된 데 대한 실망으로 사퇴하기도 했다.
문 장관은 연기 발표가 자신의 결정이라고 했지만 청와대 압력설이 더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임기 중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건보료 개선”이라고 기자간담회에서 의지를 강조했던 문 장관이 이런 중대한 사안을 스스로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윗선에서 지시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소신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장관도 문제지만 뒤에서 시켜놓고 책임은 피해가는 게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이제라도 진상을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갔다가는 국정에 대한 불신만 더 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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