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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의 길 위의 이야기] 여주

입력
2015.02.0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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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꿈을 꾸었다. 현관 앞 상자 안에 커다랗고 싱싱한 여주가 들어 있었다. 어디서 왔을까. 푸른 돌기의 여주가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잠에서 깨어나서는 더 의아했다. 여주는 흔한 채소가 아니고 실제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게 여주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찾아보니 여주가 맞았다. 오이와 호박을 적당히 합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말려서 반찬으로 해먹거나 약으로 쓰기도 한단다. 어쩐지 씁쓸하고 고소할 것 같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꿈을 꾼 것일까. 행운이나 복을 부르는 꿈인 것도 같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내 생활은 매우 단조롭다. 가사와 육아에 치여 여유가 없다. 원하는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신경질적이고 불만이 많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할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 그러니까 낯선 열매를 바라보는 꿈은 일탈을 꿈꾸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나의 마음인 것 같다.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원한다. 생활비와 노후를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쓰기와 식사 준비 이외의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식적이고 온건한 바람들인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다. 여주만큼이나 내게서 먼 꿈이다. 그러고 보니 너무나 개인적인 것들로 꽉 찬 마음인 것 같다. 아파트 옹벽이 무너지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산 채로 불타 죽은 사람도 있는데. 여주라니, 꿈타령이라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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