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연기의 달인 베네딕트 컴버배치(39)와 천재적인 변신을 한 스티브 커렐(53). 23일(한국시각) 열리는 87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두 배우의 신들린 연기를 시상식 전에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괴짜 같은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는 공통점도 흥미롭지만 두 배우의 이전 연기와 비교해 보면 더욱 흥미진진할 듯하다.
5일 개봉한 ‘폭스캐처’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살인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 존 듀폰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다. 2,000억원대의 갑부였던 남자가 왜 자신이 고용한 레슬링 코치를 죽이게 됐는지 단서를 찾아 나선다. 세 남자가 주인공이다. ‘폭스캐처’ 팀을 이끌고 있는 레슬링 마니아이자 조류학자인 괴짜 재벌 듀폰, 1984년 LA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딴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와 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 세 인물이 서로 주고 받는 심리적 상호작용과 그 삼각형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복잡한 감정이 차분하고 느리게 일렁이며 2시간 14분간 흐른다.
극적인 연출보다 캐릭터 연구에 치중하는 이 영화의 초점은 당연히 배우들의 연기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테이텀과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 마크 러팔로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커렐의 연기는 단연코 압도적이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겟 스마트’ 등에서 보여준 코믹 캐릭터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어냈다.
듀폰을 모사한 특수분장부터 감쪽같다. 독수리 부리 모양의 코를 단 커렐은 고개를 약간 치켜 든 채 살짝 입을 벌리고 반쯤 뜬 눈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여기에 구부정한 걸음걸이와 병적인 느낌의 말투까지. 차갑고 조용하며 섬뜩한 이 영화에 커렐의 침묵과 굳은 표정은 기이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커렐은 듀폰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자료 화면 등을 반복해 보면서도 거기에 함몰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는 “내 안의 어두운 면을 파고 드는 대신 작품 속의 리듬을 느끼고 감독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배우들이 하는 연기를 느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17일 개봉하는 ‘이미테이션 게임’도 실존 인물을 다룬다.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 수학자이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낸 암호 해독가였던 앨런 튜링(1912~1954)이 그 주인공. 24시간마다 바뀌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데 동원된 튜링이 특수 기계를 발명해 임무를 완수하기까지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천재의 영웅 스토리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방점을 찍는 건 성공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 고통의 사슬이다. 1951년 현재를 시작으로 1939~1945년의 과거, 1928년의 대과거를 오가며 암호해독팀 동료들과의 불화, 군의 방해로 인한 좌절, 동성애 행위 때문에 받은 처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상처 등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도무지 실제 존재했을 것 같지 않은 비운의 괴짜 천재를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건 천재 전문 배우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카리스마다. TV시리즈 ‘셜록’과 ‘호킹’, 영화 ‘반 고흐’ 등에서 천재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 그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천재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배우와 캐릭터 사이의 접착 부위가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끄럽다.
오만과 겸손, 선과 악, 강인함과 나약함, 무모함과 소심함, 뻔뻔함과 수줍음을 동시에 지닌 컴버배치의 얼굴은 앨런 튜링이란 인물을 만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분광한다. 마음이 급할 때마다 첫 단어를 더듬는 말투, 감정이 메마른 듯한 직설화법, 집착하듯 몰두하다 나약하게 흔들리는 자폐적 눈빛 등은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튜링의 성격을 더욱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할리우드 신고식을 치른 노르웨이 출신 모튼 틸덤 감독은 “컴버배치는 강함과 연약함, 거만함과 외로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동시에 연기할 줄 아는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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