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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인권운동 스타 '진실의 벼랑'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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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인권운동 스타 '진실의 벼랑'에 서다

입력
2015.02.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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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北 14호 수용소 탈출 이야기 2년 후 증언 번복으로 후폭풍

北 인권유린 실태 부정할 수 없지만 신씨 증언 어디까지 믿을지 논란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탈북자 신동혁씨가 작년 9월 23일 유엔총회 기간에 미국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 행사에서 증언하고 있다. 신씨는 4개월 뒤 증언을 일부 철회했다. 뉴욕=AP연합뉴스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탈북자 신동혁씨가 작년 9월 23일 유엔총회 기간에 미국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 행사에서 증언하고 있다. 신씨는 4개월 뒤 증언을 일부 철회했다. 뉴욕=AP연합뉴스

“하든과 함께 쓴 책에서 한 말들이 다 맞는 것인지요, 정확한지요?”

“예, 거의 저는 100% 정확하게 그렇게 서술이 돼 있고….”

2013년 8월20일 연세대에서 열린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서울공청회. 마이클 커비 당시 위원장과 탈북자 신동혁(33)씨는 입증이 불가능한 증언의 신빙성을 놓고 이런 대화를 나눈다. 당시 신씨는 정치범수용소 14호에서 유일하게 탈출한 중요 증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주춤하며 던진 ‘거의 100%’에 주목한 이는 없었다. 그마저 통역과정에서 ‘100%’로 전달됐고, COI는 보고서 14개 문단에서 ‘신동혁’을 등장시켰다. 신씨 스스로 의심을 던진 ‘거의’가 17개월 뒤 문제가 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봉천동의 탈북자 김혜숙(54ㆍ여)씨 자택.“18호수용소에서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의 처형 장면을 목격한 게 사실입니까?”미국에서 급히 날아온 언론인 블레인 하든은 묻고 또 물었다. 하든은 신씨를 북한인권운동의 아이콘으로 만든 주인공. 그가 2012년에 신씨 이야기를 다룬‘14호 수용소 탈출’은 세계 27개국으로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달 16일 신씨가 일부 거짓 증언을 털어놓자 누구보다 당황한 이도 그였다. 18호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14호와 달리 일반형사범들이 수용되는 곳. 증언번복으로 책은 14호가 아닌 18호 수용소 이야기가 될 판이었다. 급히 한국을 찾아 신씨로부터 재차 증언오류를 확인한 그는 이번에는 일주일을 기다려 러시아에서 막 귀국한 김씨를 찾았다. 하지만 18호 출신인 김씨의 답변은 “신씨 증언이 14호 얘기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이었다.

신씨는 지난달 18일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의 허위증언 보도 직후 페이스북에 “모든 사람은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란 글을 남긴 채 20일째 잠적 중이다. 한때 도미설까지 나왔으나 서울에 체류 중인 것으로 보인다. 하든 이외에는 누구도 만나지 않고 전화, 이메일, SNS 등 외부접촉도 피하고 있다. 언론이 신씨와 숨바꼭질 하는 사이 미 뉴욕의 유엔본부와 워싱턴의 국무부, 서울의 당국은 술렁이며 긴박하게 돌아갔다. 유엔은 앞서 COI보고서를 근거로 북한인권문제를 안보리로 이관했고, 안보리는 공식의제로 채택해 놓고 있다. 신씨의 증언오류가 보도되자 미 국무부는 “가장(the most) 끔찍한 정치범수용소에 있었느냐, 아니면 매우(very) 끔찍한 정치범수용소에 있었느냐의 문제”라며 북한 인권문제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커비 전 COI위원장 역시 “북한인권 참상은 달라질 게 없다”며 보고서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겉으론 태연한 반응과 달리 물밑에서 신씨 관련 기관이나 인사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항목 ‘신동혁’에 대해 “사실의 정확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공개하고, 내부적으로는 항목삭제 논란도 벌이고 있다. 2006년 8월 신씨 입국 때 조사를 맡았던 국정원은 뒤늦게 증언오류를 확인하기 위해 일찍부터 신씨를 의심해온 김혜숙씨와도 접촉하고 있다. 김씨는 2011년 낸 자서전 ‘눈물로 그린 수용소’등에서 신씨가 14호 수용소에서 목격했다는 그의 삼촌 신명섭과, 북한 유명과학자 백설희가 실은 18호 수감자라고 상반한 증언을 했다. 한국 당국은 이번 신씨가 증언오류를 인정하기 수개월 전 이상징후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신씨 다큐멘터리 상영이 취소됐고, 정부나 인권단체 행사에 신씨의 참석이 고의 배제된 정황들이 확인되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수개월 전 김혜숙씨 이외에 또 다른 사람이 신씨 증언과 배치되는 말을 해, 그 때부터 의심을 했다”며 “국정원에도 협력관을 통해 신씨 증언을 확인하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씨의 증언을 검증할 위치에 있는 국정원과, 신씨를 첫 자서전 ‘세상 밖으로 나오다’의 집필을 도왔던 북한인권정보센터는 “공식적으로 해줄 말이 없다”며 침묵하고 있다.

어디까지 진실일까

①신씨가 탈출한 수용소가 14호인가 18호인가는 아직 논란 중이다. 신씨는 자서전에서 서류상 평남 개천시 외동리(14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6세 때 14호에서 18호로 이동했다고 번복했다. 북한은 지난 10월 공개한 반박 동영상에서 신씨 아버지 신경섭을 등장시켜 “우리는 봉창리(18호)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러자 신씨는 18호에서 1999년과 2001년 두 번 탈출한 뒤 체포돼 2002년 14호로 이전 수감됐고 6개월간 고문을 당했다고 새롭게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신씨는 6세부터 19세까지 18호에 거주하다 20세부터 탈출한 2005년까지 3년간은 14호에 산 것이 된다.

②불고문과 관련, 신씨는 자신이 고문당한 시기를 번복했다. 처음 밝혔던 13세 때가 아니라 20세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문을 당한 이유 역시 달라지게 된다. 자서전과 하든의 책에서는 13세 때 어머니와 형의 탈출에 대한 사전인지 심문과정에서 당했다고 했다. 신씨는 이를 두 번째 탈북 이후 잡혀 고문당했다고 수정했다. 그렇다고 신씨가 불고문이란 반인권적 처벌을 당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2007년 영국 런던에서 신씨를 진찰한 힌셸우드는 “신씨의 등 아래 상처는 불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③어머니와 형의 처형 장소는 큰 논란거리다. 신씨는 처음 자서전에서 14호에 살 때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모의해 처형당했다고 한 뒤, 하든의 책에서는 자신이 탈출 모의 사실을 밀고해 처형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18호 출신의 김혜숙씨는 자신이 처형 현장(18호)에 있었고 어머니와 형의 죄목은 살인죄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 신씨는 죄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처형장소가 18호라고 밝혀, 김씨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이는 자신이 18호에 살았다는 것을 인정한 대목으로 보인다. 사실 어머니와 형을 죄의식 없이 밀고하고, 공개처형을 목격한 장면은 신씨의 14호 생활에서 가장 아픈 장면으로 각인돼 있었다. 하든이 서울에서 김씨를 만나 처형장소가 18호인지를 반복해 확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거짓말 왜 했나

신씨는 증언번복의 이유를 정신적 후유증이라고 했다. 하든과 통화에서는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드러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가족이 처형된 비극적 사실을 온전히 드러내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김미영 세이지 코리아대표는 “탈북자들은 불편한 기억을 변형시켜 진술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씨도 탈북 이후 상황의 비극성을 깨닫고 기억을 일부 변형시켰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씨는 “장소나 날짜 환경 등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질 지 몰랐다”고 거짓말의 의도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로선 북한 인권참상을 알리는 게 중요하지 일부 달리 말한 게 문제되진 않을 걸로 판단했을 법하다. 이런 신씨에게 비판적인 이들은 탈북자들이다. 이들은 기억을 편집하더라도 굳이 14호에 살았다고 한 것이 의도성이 있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은 “완전통제구역으로 탈출자가 없던 14호 수용소 출신이란 점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어, 이야기를 꾸몄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탈북자 이순옥씨도 14호 출신의 정치범이라며, 북한이 기독교인들을 쇳물을 부어 죽인다고 미국 의회에서 증언까지 했으나 나중에 거짓증언으로 드러났다.

작년 9월 23일 미국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행사에서 존 케리(오른쪽) 미 국무장관이 신동혁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작년 9월 23일 미국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행사에서 존 케리(오른쪽) 미 국무장관이 신동혁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

신씨 증언 내용에 대한 의구심은 탈북자 사회에서 항상 제기됐었다. 김미영 대표는 “2011년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서울에서 신씨와 앉아 검증을 시도했다”며 “대답하지 않던 신씨는 ‘진실대로 썼다’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자리를 떠났다”고 말했다. 김혜숙씨 역시 “신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가 나를 피해 확인이 어려웠다”고 했다. COI공청회나 각종 인권회의에서 자신 있게 증언했던 신씨지만 주변의 검증에는 애매한 태도를 보여왔던 것이다. 국정원 역시 일찌감치 신씨의 허위 증언 사실을 파악했지만 함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혜숙씨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2011년 4월 신씨에게 전화를 걸어 “14호 돼지목장에서 백설희를 만났다고 했는데 백설희가 북한에 둘이냐”고 묻자 한참 있다 입을 연 신씨가 “그럼 그 아주머니(김혜숙) 말이 맞겠지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당시 김혜숙씨는 자서전 ‘눈물로 그린 수용소’에 북한 유명 과학자 백설희를 14호가 아닌 18호에서 만났다고 기술했다. 당시는 하든의 책이 출간되기 전인 점을 감안하면, 국정원은 신씨의 증언 오류를 큰 문제로 보지 않았을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명박 정권 때 신동혁의 증언이 허위임을 알았음에도 국정원이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묵인했을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2년 동안 신씨를 취재해 책을 낸 하든 역시 신씨의 거짓말을 모른 척 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있다. 하든은 신씨의 증언을 반박하는 김혜숙씨 증언이 공개된 지 1년 뒤에 ‘14호 수용소 탈출’을 출판했는데 공교롭게도 신씨와 김씨 증언이 엇갈리는 내용은 빼버렸다. 김씨는 하든과 만나 ‘백설희 부분을 왜 책에서 다루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신씨가 중요하지 않다며 뺄 것을 요청을 해왔고 나도 이에 동의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명 언론인인 하든이 의심되는 중요 내용을 검증하지 않고, 신씨의 요청을 들어준 것 역시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 위원장이 보고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제네버=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 위원장이 보고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제네버=로이터연합뉴스

북한 인권유린,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다

신씨의 증언번복 이후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 번지고 있다. 신씨 스스로 어머니와 형을 밀고한 것인지, 실제로 14호에서 탈출한 것인지 등 계속되는 의혹에 대해 추가 해명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당사자인 신동혁씨와, 그의 자서전을 처음 써 세상에 알렸던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지금 사태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신씨의 증언 번복에도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란 점은 정부 당국이나 전문가들의 입장이 일치한다. 신씨가 경험했던 수용소의 위치는 다를지언정 그가 인간 이하 대접을 받았고 어머니와 형의 처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실은 북한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이다. 오 연구원은 “북한의 수용소는 계속 다뤄졌던 문제이고 신씨가 겪은 생활상이 틀린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도 “COI보고서는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을 일반화한 것”이라며 “신동혁은 여러 증인 중 한 명인 만큼 그와 보고서는 별개”라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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