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성질환 '소아 특발성 관절염'
아침 시간대에 움직이면 통증
고열 나는 전신형 증상
패혈증 비슷… 오진 가능성 커
치료 약물 급여 안 돼 부담
이번에는 심장과 폐에 물이 들어찼단다. 2년 전엔 간에 물이 차서 죽을고생을 했었다. 7살 때 열이 나 감기인 줄 알고 동네병원에서 감기치료를 받았지만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종합병원으로 옮겨 입원하면서 1주일 간 항생제 투여를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서울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담당 의사의 말에 아픈 아이를 데리고 서울의 큰 병원을 다 돌았지만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1년 넘게 병원을 전전하다 보니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퉁퉁 부어 있어 말이 아니었다.
진서(9) 양의 투병기이다. 어린 진서를 괴롭힌 병은 바로 ‘소아 특발성 관절염 (Juvenile idiopathic arthritis)’으로, 과거 소아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불렸던 희귀난치성질환. 일반적으로 관절염은 외부의 균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킨다. 하지만 류마티스 관절염은 외부 균에 맞서 싸워야 하는 몸의 면역기관이 외려 자신의 관절부위를 공격해 염증을 발생시키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소아에서 발병하고, 병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소아 특발성’이란 이름이 병명에 붙었다.
김중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류마티스 관절염이 성인질환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며 “과거에 비해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고 환경오염이 심해졌을 뿐 아니라, 위생환경의 개선으로 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면서 소아들 사이에서 소아 특발성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만16세 이전, 1개 이상 관절에서 6주 이상 관절염 증상이 발생하면 소아 특발성 관절염으로 진단한다. 2주 이상 고열이 관절염에 더해 발생하면 ‘전신형’, 발병 후 3~6개월 간 침범되는 관절이 4개 이하이면 ‘소수형’, 5개 이상이면 ‘다수형’ 관절염으로 구분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소아 특발성 관절염과 관련된 정확한 통계가 없다. 프랑스는 10만명 당 10명, 미국은 14명, 노르웨이는 20명이 이 병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아 특발성 관절염환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호주로 10만명 당 400명에 이른다.
3살 때 고열로 병원을 찾은 준수(17). 엄마는 아들이 감기에 걸린 줄 알았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2년 간 병원을 전전하면서 숱한 검사를 한 끝에서야 소아 특발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준수는 관절염에 고열이 동반되는 ‘전신형’ 환자다.
소아 특발성 관절염 환자의 20%가 앓고 있는 질환이 바로 전신형이다. 말 그대로 관절 뿐 아니라 전신에 증상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39℃ 이상 고열이 몇 주 이상 이어지면서 발진, 임파선염, 심낭염, 복통, 백혈구증가증, 빈혈, 파종성 혈관 내 응고(DIC)가 발생할 수 있다. 김광남 한림대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 특발성 관절염은 대부분 감기 증세나 무릎 통증을 동반해 대다수 부모들이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고열이 나는 전신형 증상은 패혈증과 유사해 오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광남 교수는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건강보험 체계에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등록, 치료비 본인 부담률을 기존 50%에서 20%로 낮추는데 기여한 바 있다.
생물학적 제제 효과 좋지만 비급여라 경제부담 가중
2013년부터 전신형 등 소아 특발성 환자들에 환영 받고 있는 약물이 바로 ‘생물학적 제제’다. 소아 특발성 관절염 환자들은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을 복용하다 상태가 악화되면 다음 단계로 생물학적 제제를 투여한다. 문제는 치료비용. 김광남 교수는 “미국, 일본 등에서 임상시험을 통해 소아에게 투여 해도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약물이라면 건강보험에서 요양급여로 인정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실례로 JW중외제약이 수입, 판매하고 있는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악템라주(토실리주맙)’는 성인 류마티스 환자에게는 급여가 인정되고 있지만 소아 특발성 관절염 환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한 달에 2회 이 주사제를 투여 받고 있는 전신형 환자들은 약값 전액을 부담하고 있다. 악템라주의 1회 투여비용은 체중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30㎏ 48만원, 40㎏ 60만원 정도이다. 만약 악템라주가 급여로 인정되면 환자들은 약값의 10%만 부담하면 돼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김기환 교수는 “수 년간 치료를 받은 환자 중에는 약값만으로 억대의 비용을 지출한 사람도 있을 만큼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했다.
정부, 희귀난치성질환 보장강화 약속 ‘공염불’
급여를 인정한 주사제도 있지만 허울뿐 이라는 것이 현장 목소리다. 현재 급여가 인정된 주사제는 아바타셉트(오렌시아주), 아달리무밥(휴미라주), 에타너셉트(엔브렐주사) 등인데 이들 주사제는 5개 이상 관절에 염증이 생긴 다수형 관절염 소아환자만 급여를 인정 받을 수 있다. 4개 이하로 관절 염증이 발생한 소수형 관절염 소아환자는 비급여로 이들 주사제를 맞아야 한다. 김중곤 교수는 “치료에 효과가 있는 약을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사용해야 하는데 경제적 부담 때문에 사용하지 못해 소수형에서 다수형 관절염으로 상태가 악화되는 환자들이 많다”며 “효과가 개선된 신약은 성인이 쓰고, 기존 약들은 소아들이 쓰는 웃지 못할 촌극이 빚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또 “현 정부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4대 중중질환에 포함, 의료보장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지만 소아 특발성 관절염과 같은 희귀난치성 질환의 의료보장성 강화는 제자리걸음”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한 관계자는 “악템라주를 수입, 판매하고 있는 제약사에서 성인 류마티스 환자만을 대상으로 허가를 신청했다”며 “소아 특발성 관절염 환자까지 적응증을 확대해 신청하면 적극적으로 검토해 허가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악템라주 투여를 원하는 환자들이 많아 올 하반기 내 소아 특발성 관절염 환자도 급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식약처에 심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엄살 피운다” 병 알지도 못하는 교육현장, 아이들 가슴 ‘피멍’
4살 때부터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재원(14) 양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다. 재원 양의 고민은 병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지 못한 키와 약 복용으로 부은 얼굴이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무겁다. 재원이 만큼 마음이 무거운 사람은 바로 재원이 엄마다.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감당하기 힘든 통증을 이겨내고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 대견스럽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에게 차별을 받을까 걱정이 앞선다. “정말 아파서 체육을 하지 못하면 꾀병 부린다고 핀잔하는 선생님도 있었어요. 알지도 못하면서 엄살을 부린다고 질책하는 선생님들이 없으면 합니다.” 재원 엄마의 당부는 계속된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우리 아이처럼 주사제가 필요한 어린 환자들이 많은데 경제적 문제로 제때 약을 쓰지 못하고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김중곤 교수는 “신체적인 고통과 함께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소아 특발성 관절염 환자들이 많다”며 “질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무조건 뛰고, 운동하라고 종용하는 선생님들도 간혹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싫고, 소외감을 느끼는 등 정신적으로 큰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고 했다.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한 여성은 “고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조회시간에 ‘너 소아 류마티스 환자라며?’하면서 병명을 공개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며 “치료 받느라 학업성적이 떨어지고 아이들에게 외면 당해 가출 후 미혼모가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생님이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중곤 교수는 “소아 특발성 관절염은 성인 류마티스 관절염보다 예후가 좋지 않다”며 “짧은 시간 내 관절이 파괴되는 등 일상생활이 힘든 소아 특발성 관절염 환자들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기환 교수는 “성인이 돼 발병한 것으로 알았지만 소아 때 이미 질환이 발생한 환자 비율이 30%에 달하는 베체트병처럼 소아 특발성 관절염 환자도 증가할 것”이라며 “소아 특발성 관절염 전문의 제도가 없는 국내에서 이들 환자를 보살필 수 있는 의료인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김광남 교수도 “질환을 일찍 발견해 적절한 약물요법을 시행하면 병의 진행을 막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이 병을 잘 아는 전문가가 부족하는 것”이라며 “전문의 육성과 함께 환자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남성 환우들이 군대를 면제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병무청은 올해 1월, 국방부훈령으로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을 개정해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이들을 3~6등급으로 분류해 판정을 내린다. 김광남 교수는 “법 개정이 되기 전까지는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앓아도 무조건 군대에 입대해야 했다”며 “중증 환자가 억울하게 군대에 가는 일이 생기지 않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혹시 우리 아이가 소아 특발성 질환?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난치성질환인 소아 특발성 질환이지만 평소 아이를 세심히 관찰하면 빨리 증상을 눈치 챌 수 있다. 소아 특발성 질환 증세와 가장 유사한 질환이 ‘성장통’이다. 아이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으레 부모들은 성장통을 의심한다. 하지만 성장통과 소아 특발성 관절염은 증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통증을 호소하는 시간대가 다르다. 성장통은 밤에 통증이 발생하지만 소아 특발성 관절염은 아침에 통증이 일어난다. 만약 아이가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의심해야 한다. 또 성장통이 온 부위를 마사지하면 아이들이 시원해 하지만 소아 특발성 관절염이 생긴 부위를 마사지하면 아이들이 뛸 듯이 아파한다. 성장통은 가만히 있으면 통증을 느끼지만 소아 특발성 관절염은 움직이면 통증이 발생하는 것도 차이다.
평소 잘 놀던 아이가 활동력이 떨어지거나 잘 움직이지 않으려 하면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의심해야 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아이들은 아파도 표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평소 움직임과 차이가 나고 무릎과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의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무릎, 발목관절 등에 발생하는 소아 특발성 관절염은 고통이 심해 눈치를 챌 수 있지만 손목에 염증이 발생하면 빨리 알아채기 힘들다. 손목관절은 평소에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중곤 교수는 “다른 관절이 아파 병원을 찾은 환자 중 이미 손목관절이 굳어서 온 경우가 많았다”며 “평소 부모들이 아이들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치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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