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서 용역 직원 투입 행정대집행
법원 "13일까지 심문 필요" 중단 결정
주민들은 "마을 상징 파괴" 강력 반발
서울 강남구가 재개발 방식을 두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개포동 구룡마을의 주민 자치회관을 철거하려다 법원의 결정으로 작업 두 시간여 만에 중단했다. 주민들은 “마을의 상징이 파괴됐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강남구는 “신고 용도와 달리 주민 자치회관으로 불법 사용 중인 건축물이 안전상의 우려가 있고, 일대 재개발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철거한다”며 6일 오전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다. 해당 2층 건축물(연면적 528㎡)은 구룡마을 토지주들로 구성된 주식회사 ‘구모’가 2010년 3월 농산물 직거래 점포로 신고했지만, 최근까지 주민들이 자치회관으로 사용해 왔다고 구는 설명했다. 구는 지난해 12월 건축주에게 자진철거 명령을 내렸으나 변화가 없자 이달 5일 행정대집행을 통지하고 이날 철거를 강행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구룡마을 주민 100여명은 5일 저녁부터 자치회관에 모여 강제 철거 저지에 나섰다. 6일 오전 7시50분쯤 파란 조끼를 입은 공무원 300여명과 구청이 고용한 용역 직원 200여명이 포크레인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자 주민들은 건물 안에서 몸으로 버티며 철거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용역 직원과 대치하던 주민 한 명이 실신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경찰은 4개 중대 규모(320명)를 현장에 급파해 충돌에 대비했고, 소방차와 경찰차가 인근 도로를 점거하면서 일대가 혼잡을 빚기도 했다.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강남구의 강제 철거를 규탄했다. 구룡마을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고모(77ㆍ여)씨는 “주민 복지를 위해 쓰이던 회관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며 “부숴도 또 짓고, 부숴도 또 지어서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제완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실장은 “구룡마을 주민들도 합법적인 구민인데, 이들이 쓰는 공간을 무참히 파괴한 것에 대해 구청장에게 정식으로 항의 하겠다”고 밝혔다.
철거 작업은 집행 두 시간여 만에 법원의 결정으로 중단됐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 박연욱)는 “철거작업 개시 경위 등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 심문 기일이 필요하다”며 13일까지 행정대집행을 잠정 중단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지난달 23일 주식회사 구모가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낸 행정대집행 처분 취소 가처분소송에 따른 것이다.
철거는 중단됐지만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던 자치회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짧은 시간의 철거 작업 동안 건물 외벽이 부서져 내부가 휑하게 드러났고, 각종 집기류와 샌드위치 패널 등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박종원(46)씨는 “행정명령이 나올 때까지만 철거를 미뤄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했다”며 “자신만만하게 철거하던 공무원들이 법원 결정이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도망가는 것을 보고 분통이 터졌다”고 말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13일 이후 법원의 판결대로 재철거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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