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공학의 기틀이 된 만능기계를 최초로 만든 영국의 천재 수학자로 정교하고 난해한 독일 에니그마 암호문을 해독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 그리고 정부에 의해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41세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스스로 깨물어 삶을 마감한 동성애자. 앨런 튜링(1912∼1954)은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었으나 개인적으로는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IT 업체 애플의 로고인 베어 먹은 사과를 놓고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튜링을 존경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헌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부터 영국 정부가 추진한 군사암호해독 프로젝트에 참여한 튜링은 1939년 9월 전쟁 상황에서 런던 북쪽 블레츨리 파크에 위치한 첩보활동 핵심 정부신호암호학교의 암호해독반 수석 책임자로 선출돼 봄베라는 기계를 만들고 독일 에니그마 암호체계를 해독한다. 연합군은 그때까지 독일의 지령을 엿듣는 데는 성공했지만 암호를 해석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니그마 암호 체계는 매일 회전자의 위치가 바뀌어 24시간 안에 풀지 못하면 소용이 없어 난공불락이었다.
튜링의 업적은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죽음 역시 20년이 지난 1974년까지 숨겨졌고 사후 61년 만인 2013년 12월 24일에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특별사면으로 무죄가 됐다. 이 모두 그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튜링은 1952년 집에 든 도둑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다 사생활이 들통났는데 중대한 외설 행위란 죄목으로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신화적인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기에는 성능이 부족했던 맨체스터 컴퓨터와, 그리 친분이 두텁지 않았으나 매몰차게 배신하고 자신에게 등을 돌린 과학계,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강제로 주입하는 등 그의 마지막 인생 2년에 걸쳐 유난히 강압적이었던 사회적 개입은 더 이상 그를 숨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책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튜링의 일대기를 가장 상세하고 완벽하게 기술한 전기로 평가 받는다. 저자는 영국의 수리물리학자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튜링의 업적과 인생을 무려 872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했다. 때문에 일반인이 알기 힘든 튜링의 논문이나 당시 튜링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론들, 과학자들과의 교류 등을 폭넓게 해독한다. 대신 튜링의 사고체계를 따라가며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까지 복원을 시도해 읽기가 꽤 까다롭고 어렵다. 17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 같은 제목의 영화도 개봉하니 교차해서 읽는 것도 방법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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