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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위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 희망의 연기를 피우다

입력
2015.02.0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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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이후 무간지옥의 6년

투쟁과 절망, 그리고 희망의 기록

'와락' '노란 봉투 프로젝트' 등

시민들과의 연대로 인간성 회복

이창근의 해고일기-쌍용차 투쟁 기록 2009~2014 이창근 지음 오월의봄 발행ㆍ432쪽ㆍ1만6,000원
이창근의 해고일기-쌍용차 투쟁 기록 2009~2014 이창근 지음 오월의봄 발행ㆍ432쪽ㆍ1만6,000원

해고는 살인이 맞다. 노동을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그 대가인 임금으로 사회적 기능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선고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희망퇴직’은 희망을 거세 당하는 일이고 ‘정리해고’는 부속품으로서 수명이 다했다는 사망신고서다. ‘이창근의 해고일기’는 인간이 자본과 정부에 의해 어떻게 고립돼가고 죽어가는지, 그리고 개인들의 연대로 어떻게 회생해가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2009년 이후 5년 6개월 동안 “해고자 복직”을 외치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투쟁기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인 저자가 그간 써둔 글과 칼럼을 모았다.

70미터 굴뚝에서 내려다본 지상. 5년 반 동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이 외친 “해고자 복직”이 이렇게 아스라히 멀고도 아찔한 구호인 것일까. 오월의봄 제공
70미터 굴뚝에서 내려다본 지상. 5년 반 동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이 외친 “해고자 복직”이 이렇게 아스라히 멀고도 아찔한 구호인 것일까. 오월의봄 제공

긴 이야기, 그리고 아직도 진행중인 이야기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쌍용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차가 4년 만에 철수한다. ‘기술만 빼낸 먹튀’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졌다. 법정관리 중에 사측은 경영악화를 이유로 2,646명을 구조조정 대상에 올린다.

이에 반대하는 공장 점거로 긴 싸움을 시작한 노동자들은 자본과 정부의 ‘반인권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한다. 사측은 “아직도 공장에 있으세요?” “민주노총도 당신들을 버렸다”는 메시지로 노동자들을 조롱했고 모든 출입구를 봉쇄한 채 식수조차 끊었다. 시골 노모를 시켜 전화를 걸게 하고, 돌 지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려주는 심리전까지 더했다. 하긴 어버이날인 5월 8일에 정리해고 계획을 노동부에 신고한 회사였다. 저자는 “잔인하고 비열한 자본의 진면목”이라며 “회사가 잘나갈 때는 ‘가족’이라 부르지만, 쫓아낼 때는 ‘가축’보다 못한 대접을 한다”고 회상한다.

공권력은 물리력을 썼다. 공장 하늘에서 최루액을 뿌렸고 폭력적인 진압작전을 시작했다. 공권력이 공장에 처음 진입한 2009년 7월 21일은 당시 노조 정책부장의 아내가 목을 맨 날이었다. 공장 옥상에 내걸린 조기를 보고도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일로 한상균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22명이 무더기로 구속됐고, 이후 사측이 청구해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 47억원까지 얹어졌다. 5년 반의 투쟁을 이어오는 동안 목숨을 잃은 노동자와 가족이 26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어떻게 희망이 다시 싹트는지, 자본과 정부가 저버린 인간성이 어떻게 개인들의 연대로 회복되는지 역시 기록돼있다.

정신과전문의인 정혜신 박사와 이명수씨 부부의 도움으로 시작된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대표적이다. “그 동안 마음속에 쌓아둔 분노와 좌절 그리고 방향 없는 미움의 실체를 알고 싶었고 찾고 싶었다. (와락은) 해고가 경제적 관계의 단절뿐만 아니라 사회심리적인 문제까지 포함하는 사안임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노조가 떠안은 손해배상액 47억원을 모으기 위해 시민이 나선 ‘4만7,000원 연대’, 노란 봉투 프로젝트도 있다. 가수 이효리씨가 “제 4만7,000원이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리길 바랍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동참해 화제가 됐다.

저자는 지금 지상에 있지 않다. 70m 상공,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시위 중이다. 칼바람 몰아치던 지난해 12월 13일 새벽 4시에 올라 2월 6일로 56일째를 맞았다. 고공에서 견뎌낸 겨울의 엄혹함은 그의 지난 5년여보다는 덜했는지 모른다. 정리해고 통지서에 “어떡해…”만 반복한 채 어깨를 떨며 울던 아내, 최루액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아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와 가족의 빈소를 찾아 다니느라 몸에 밴 듯 익숙한 향 내음이 그를 얼마나 몸서리치게 했던가.

책의 마지막은 저자가 굴뚝에 오른 지 6일째에 쓴 글이다. 그는 굴뚝 위에서 새로운 희망의 불을 지피고 싶다. “정리해고로 공장 안팎이 무간지옥의 6년이었다. 공장 안 동료들에게 손을 내민다. 쌍용차 문제의 매듭을 함께 풀어보자고.”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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