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미셸 푸코의 저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푸코가 1976년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출간 당시 11강에 포함된 ‘생명정치’ ‘생명권력’ 개념은 수많은 후속연구를 낳으며 현대 정치철학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기도 했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1998년 한국어 출판 이후 17년 만에 오역을 바로 잡고 누락된 구절을 추가해 출간됐다.
그간 생명정치, 생명권력이 많이 회자된 탓에 이 개념을 책의 주요 테마로 아는 독자가 많지만 정작 책에 등장하는 핵심 개념은 ‘전쟁 모델’이다. 푸코는 전쟁(전투, 내전, 침략, 반란, 봉기 등)을 이해해야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푸코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경구를 뒤집는다. 푸코에 따르면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연속이다.” 즉 정치에 앞서 전쟁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뒤집어 말하면 정치는 전쟁을 억제하거나 은폐할 수 있을 뿐 제거할 수 없고, 전쟁의 가시화는 곧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푸코는 특정 집단이 전쟁 모델을 통해 정치를 사유하기 시작한 시기를 16, 17세기로 본다. 예를 들어 이 시기 영국 수평파와 의회반대파(청교도)는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정복 후 사라진 앵글로색슨족의 원초적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며 군주제와 귀족의 지배에 대항했다. 이전까지 역사란 “권력과 또 다른 권력 사이의 다툼”이었을 뿐이지만 이 시기부터 역사 속에 ‘주체’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또 이때부터 역사 담론(푸코는 이를 ‘역사의 앎’으로 표현한다)이 투쟁의 무기로 활용됐다.
역사의 앎을 활용한 전쟁 모델은 이후 프랑스 혁명을 거쳐 민족주의 담론(국가-국민-주권을 결합한 근대 정치권력), 계급투쟁론(사회주의), 국가인종주의(나치즘)의 세 가지 방향으로 분화했다. 푸코는 이 중 인종에 대한 새로운 앎, 즉 생물학과 결탁한 인종주의에 주목했다. 생명정치, 생명권력 개념은 이 같은 맥락에서 등장한다.
생명권력은 쉽게 말해 인간을 살게 ‘만드는’ 권력의 속성을 말한다. 살게 ‘만든다’는 것은 권력이 더 이상 생명을 ‘주어진 것’ 또는 ‘자연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로, 생명이야말로 권력이 관여하고 조절해야 할 일차 대상으로 여긴다. 푸코에 따르면 이는 인간의 죽음에 개입해(죽게 ‘만드는’ 권력) 위세를 드러냈던 과거 권력(주권권력)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다소 복잡한 이 개념은 푸코의 또 다른 저서 ‘생명정치의 탄생’을 함께 읽으면 한결 이해하기 쉽다.
생명권력은 동시에 ‘비정상성’을 상정해 특정 인종을 퇴화시키고 ‘정상성’에 부합한 인종만 살아 남게 만드는 속성도 지닌다. 집단의 건강한 정상성을 보존하겠다는 나치즘의 논리가 대표적인 예다. ‘빨갱이’ ‘홍어’ ‘종북’ 등 특정 집단에 비정상의 딱지를 붙이는 한국 사회가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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