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현장 CCTV 얼굴 식별 안 되면
발의 각도 등 걸음걸이 분석해 용의자와 동일인 여부 가려내
특허받은 '얼굴 대조 시스템' 부정면허 발급자 적발 돕기도
“자, 여기 화면을 보면 어깨를 축으로 왼쪽이 올라가고 오른쪽이 처져 있죠? 팔자 걸음에다 오른쪽 발도 저는데 특징이 뚜렷한 걸음걸이예요.”
지난 4일 강원 원주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디지털분석과의 대형모니터 위에 지난해 말 검거된 연쇄 절도범의 행적을 담은 폐쇄회로(CC)TV 화면이 뜨자 정도준 연구사의 눈빛이 번뜩였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과 강남구 논현동 일대 고급빌라만 골라 턴 절도범 사건은 인상착의만으로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특유의 걸음걸이 때문에 범인의 꼬리가 밟혀 화제가 됐었다. 당시 CCTV 화면을 분석한 정 연구사는 “절도범의 걸음걸이가 대한민국에서 오직 한 명만 보유한 걸음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얼굴형, 키 등을 복합적으로 따져보면 용의자와 화면 속 인물이 동일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뛰어서’가 아닌 ‘앉아서’ 범인을 잡아내는 이들이 있다. 국과수 디지털분석과 직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 국과수 문서영상과를 모태로 한 디지털분석과는 디지털 관련 범죄 증가로 2013년 11월 현재의 이름으로 확대 개편된 조직이다. CCTV를 비롯한 사진, 비디오 등 각종 영상물의 복원, 판독, 감정 등을 주로 수행한다. 휴대폰, 하드디스크, 메모리카드 등 각종 디지털 증거의 복원과 분석은 물론 전통적인 필적 및 인영 등의 감정도 이들의 몫이다. 17명 직원 대다수는 석ㆍ박사 학위를 가진 컴퓨터 공학 전공자다.
이들은 컴퓨터 앞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내지만, 이들의 분석이 범인을 잡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걸음걸이 분석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발의 각도, 뒤꿈치가 땅에 닿는지 여부 등을 살펴 범행 당시 찍힌 CCTV 속 인물과 지목된 용의자가 같은 인물인지 가려내는 일이다. CCTV 속 얼굴로는 범인을 식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요새 유용한 수사방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 연구사는 “CCTV 분석 요청이 하루 1건 이상 들어오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걸음걸이 분석도 한다”고 말했다.
물론 걸음걸이 분석은 절뚝거리거나 팔자, 안짱 등 걸음걸이가 특이한 사람일 경우에만 유효하다는 한계가 있다. 또 초당 10장면 이상을 저장하는 수준의 CCTV여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 정 연구사는 “걸음걸이 통계를 확보한 뒤 용의자 걸음걸이가 국민의 10%만 가진 특징에 해당한다고 감정할 수 있으면 보다 정확하게 용의자를 지목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분석과는 걸음걸이 분석 외에도 여러 기법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2013년 미궁에 빠진 ‘인천 모자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 게 대표적 성과다. 연구사들은 유력한 용의자인 차남이 차를 몰고 어머니 집 앞을 지나는 CCTV 영상에서 혼자 타고 있는 차량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혼자 차에 타고 있었다고 진술했던 차남은 경찰이 국과수 감정서를 들이밀자 그제서야 어머니와 형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변준석 연구사는 “어머니와 큰아들의 몸무게를 합친 무게의 물건을 차에 싣고 달렸을 때와 아닐 때의 영상을 비교해보니, 차체가 지나치게 내려앉아 혼자 탄 차량일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분석과가 특허를 낸 얼굴대조 시스템도 실적이 쏠쏠하다. 지난해 11월 서울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 재능 기부 형태로 시스템을 제공했는데 한 달 만에 부정면허 발급자 4명을 적발해냈다.
국과수가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 시대로의 전환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응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 얼굴 및 걸음걸이 분석 신뢰도를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하고 인원보강도 시급하다. 변 연구사는 “전국에서 접수된 사건을 17명이 처리하다 보니 접수 후 분석에 착수하는 데까지 일주일 가량이 걸린다”며 “시간을 다투는 사건일 경우 해결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원주=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