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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성실, 정직이 성공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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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성실, 정직이 성공의 열쇠"

입력
2015.02.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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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사·농협직원·곡물상 전전… '대박' 노린 장어수입사업 대실패

빈손으로 시작한 콩나물재배사업, 성실 무기로 믿음주는 브랜드 '우뚝'

2008년 말, 경북 경주시 안강읍과 강동면 일대 식당과 단체급식소에는 40초반의 낯선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재배하는 콩나물을 써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이미 그 지역에 다른 콩나물 재배업자가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조심스레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고정거래선이 있던 업소에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선뜻 주문을 줄리 만무했다. 어떻게 거래를 텄더라도 주문량은 한 업소당 하루에 3,000~5,000원에 불과했다. 배달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안강 지역을 중심으로 매달 15톤 가량의 콩나물을 납품, 연간 2억~2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명품 콩나물브랜드로 성장했다. 시원두채 이화식(49ㆍ사진) 대표의 이야기다. 정직과 성실 하나로 이름도 없던 것을 지역 최고 콩나물브랜드로 육성한 것이다.

이 대표의 하루는 오전 4시부터 시작한다. 콩나물 재배사에 들러 물을 주고, 일일이 손으로 콩나물 키를 맞춘다. 오전 6시부터는 거래처에 직접 배달한다. 하루 600~700㎏, 한 달에 15톤 가량이다. 한 움큼에 500~1,000원밖에 하지 않는 콩나물이지만, 연 매출이 2억원이 넘는다. 대기업 브랜드 콩나물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그에게는 2,000억~2,500억 매출보다 더 소중하다. 콩나물에는 그의 땀과 열정, 눈물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물리치료사 농협직원 곡물상 장어수입업자 등 대여섯 가지의 직업을 가졌다. 물리치료과를 졸업한 그는 포항의 한 개인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첫 직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을 거쳐간 환자들이 생각만큼 빨리 회복되지 않는데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사표를 던졌다. 1년여 시험공부 끝에 농협 공채시험에 합격하면서 그의 인생 2모작은 시작됐다. 나름 성실함을 인정받아 대리까지 승진 했지만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선배들이 구조조정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흔들렸다. 그는 “우리는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었지만, 평생직장이 못될 것 같았다”며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차고 나왔다. 이어 시작한 것이 곡물상이다. “정말 이번엔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는 그는 “농협근무 경험을 살리면 정말 잘 될 것 같았는데, 대형마트의 공세로 제대로 자리도 잡기 전에 빈사상태로 내몰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대표가 콩나물 재배에 투신한 것은 2008년 말부터다. 2007년 초부터 민물장어 수입사업에 친인척의 돈까지 3억원이나 투자했다가 말라카이트그린 파문으로 쫄딱 망한 뒤였다. 그는 “곡물가게가 시원찮아 아내에게 맡기고, 한꺼번에 손실을 만회하려고 시작한 게 패망의 지름길이었다”며 장어수입사업을 접고 한동안 방황해야만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원래부터 술을 마시지 못한다. “술 맛을 알았다면 아마 술독에 빠져 폐인이 됐을 것”이라며 “친구들이 독서를 권했고, 책 속에 빠졌으며 그 속에서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덕분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만 1,500권이 넘을 정도다. 1년 가까이 책과 씨름하고 있을 때 마침 이민을 가게 된 친구가 자신의 부친이 경영하던 콩나물공장을 맡겼다. 그의 인생 5막은 그렇게 시작했다.

특유의 성실함은 얼어붙은 업주들의 마음을 녹였다. 적선하다시피 하루 몇 천원 가량 주문하던 것이 질 좋은 콩나물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문량과 거래처가 급증했다. 하지만 그는 배달거리가 먼 경주시내나 포항에서 오는 주문은 정중히 사절한다. 돈 욕심이 나지 않을 리 없지만, 신선도 유지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인데, 물건이 시원치 않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직업이 생겼다. 방황하던 시절 시작한 독서 노하우를 살려 ‘한자교실’을 열었다. 명강사로 소문이 나면서 포항에서 승용차로 자녀를 실어 나르는 학부모도 생겨났다. 수업을 참관하다가 아예 등록하는 학부모도 잇따랐고, 그들 중에는 한자능력시험에 합격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오전에는 콩나물장사, 오후엔 한자교실 강사라는 투잡족이 된 것이다.

올 들어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말 도내 다른 콩나물재배업자들과 함께 영농법인을 구성했다. 이달 말이면 포항시 기계면에 4,000㎡규모의 초현대식 콩나물재배공장도 준공한다. 그때부턴 ‘옐로우 앤 그린’이라는 브랜드로 전국의 마트 등에 납품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렸는데 이젠 재능기부 등을 통해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도 나설 계획”이라며 “어떤 일이든 열정만 있다면 성공신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근사한 계획이라도 열정과 성실함이 없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다.

김성웅기자 ks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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