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겨울이 독서에 더 적합한 계절인 것 같다. 책읽기에 사계절을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야외활동이 쉽지 않은 추운 겨울에 책을 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책읽기는 곧 공부를 의미한다. 독서가 키워준 내공이 알게 모르게 어디선가 힘을 발휘하며, 삶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지적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진학과 취업을 위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공부를 한다. 특히 지금같이 새해를 시작하고 신학기를 준비하는 시기에는 공부계획을 세우며, 결심만으로 끝내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를 쓰기 마련이다. 그런 ‘공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공부(工夫)의 어원을 살펴보면, 공부는 만들 공(工)과 사내 부(夫)를 합쳐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때, 틈, 여가와 같이 시간의 의미가 포함돼 쓰인다. 노력과 수고의 의미가 깃든 공(功)이라는 글자에서 온 것으로 ‘성취하다’와 ‘돕다’라는 뜻을 갖고도 있다. 그러고 보면 공부를 하는 것은 시간을 내 나를 이롭게 할 뿐 아니라 남을 돕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겠다.
공부는 점차 재주, 솜씨, 노력의 의미를 담아 ‘노력을 들이다’ 또는 ‘수련을 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중국무술영화로 알려진 쿵푸(工夫)가 바로 그런 완숙한 솜씨나 기예를 말한다. 또한 다도 가운데 공부차(工夫茶)라는 것이 있는데, 차를 우리는 숙련된 기술 혹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만든 차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공부란 대충이 아니라 오래되고 깊은 숙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옛 선비들의 공부하는 자세를 살펴보면 먼저 책을 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담헌 홍대용은 남을 이기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라는 의미다. 공부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들뜨고 분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우쭐대며 지식을 자랑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서애 류성룡의 마음공부도 그런 예다.
사색도 중요하다. 퇴계 이황은 반복해 공부하는 노력을 중시했는데, 단순한 외우기식의 공부가 아니라 사색을 통해 내 것으로 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단순한 주입으로 생각이 연결되지 않는 나열된 상식은 힘이 아니다. 율곡 이이가 숙독을 하는 것도 기계적인 책읽기가 아닌 사색의 과정을 중시하고 생각을 키우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특히 다양한 맥락에 대한 지식의 습득도 중요한 것 같다. 넓게 보는 것이다. 학창시절 영어 학습 책을 공부할 때 맨 앞부분만 반복해서 보는 일이 흔했다. 시작했다가 포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하지만 학습책의 첫 장은 영어의 첫 단계가 아닌, 전체 맥락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전체를 보면 나중에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부에 맥락이 중요하기에 깊이 이전에 넓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깊게 봐야 할 것이 생겼다면 성호 이익처럼 취진공부(驟進工夫)를 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즉 공부를 할 때 용맹한 장수가 몰아치듯이 맹렬하게 하는 것이다. 쉬엄쉬엄 끊어서 하는 것 보다 관심사가 생겼다면 깊이 파고들어 ‘왜’라는 질문 속에 깨우치게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몰아치듯 빠져 보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공부는 지속적이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과골삼천(?骨三穿)이라 하여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날만큼 학문에 힘썼다고 한다. 이 말은 꾸준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꾸준함이라는 것은 생각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을 늘 마음에 품고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루라도 멈추게 된다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공부의 길에는 따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체질과 성향에 맞게 해야 할 것이지만, 책을 펴기 전에 마음자세에서부터 공부의 의미를 품고, 공부가 일상처럼 몸에 밴 습관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추위에 웅크렸던 마음을 펴고 다시 책도 펼쳐야겠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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