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가 그제 서울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국가 간 불평등은 줄고 있지만 한 나라 안에서의 불평등은 커지고 있다”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평등이 심해지는 나라는 성장이 저하되고, 반대의 경우 빨리 성장하는 것을 수년간 지켜봐 왔다”며 “한국은 계층 간 이동성 증대와 중산층 재건을 위해 정부의 공공지출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립튼의 충고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지난해 3월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보고서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구조조정 등 IMF 구제금융프로그램을 한국에 강요하며 성장일변도 정책을 몰아붙였던 그가 분배를 강조하는 걸 보니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 만큼 시대의 화두가 달라졌다는 방증이다.
현재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1990년대 75.4%였던 중산층 비율은 2010년 67.5%로 줄었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1990년 0.26에서 2010년 0.31로 악화했다. 무엇보다 소득불평등을 야기하는 핵심요소인 임금불평등의 정도가 외환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나빠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을 정도로 커졌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가계 빚과 사교육비 부담 증가, 자영업 붕괴 등으로 중산층의 상당수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계층간 이동의 사다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중산층이 다시 고소득층으로 올라가는 계층 상승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저성장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번듯한 일자리가 감소하는 반면 경제성장의 과실은 가계 보다는 기업으로, 가계 중에서도 고소득층으로 쏠리는 현상 때문이다. 중산층의 붕괴는 소비 위축을 불러오고 기업들의 판매 감소 및 일자리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형성한다. 열악한 분배구조를 방치한 채 성장만 추구할 경우 오히려 성장잠재력만 둔화된다는 게 IMF의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 점을 의식해 ‘중산층 70% 복원’을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집권 3년째인 지금 중산층 가계의 형편이 나아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기업 유보금에 대한 세제 강화 등 가계소득 증대 방안을 제시했지만, 아직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다.
가계소득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특단의 대책이 없이는 중산층 복원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 방안 마련이 시급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대책도 제시돼야 한다. 희망의 사다리가 끊긴 사회는 죽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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