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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선정(善政)

입력
2015.02.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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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覇者)였던 제 환공(齊桓公)이 곽(郭) 땅에 들어가서 부로(父老)들에게 “곽나라가 왜 망하게 되었소?”라고 물었다. 부로들은 “착한 사람을 좋아하고 악한 사람을 미워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뜻밖의 대답에 곽공이 “그대들의 말과 같다면 현군(賢君)인데 어찌 망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소?”라고 다시 물었다. 부로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곽공은 선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등용하지 않았고, 악인을 미워한다고 말하면서도 제거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망하게 된 이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비로소 제 환공이 수긍했다는 이야기다. 관자(管子)에 나오는 이 일화 중에 “선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등용하지 않았고, 악인을 미워한다고 말하면서도 제거하지 않았다(善善而不能用 惡惡而不能去)”는 말은 중국 역대 임금들이 되새겨야 하는 최고의 교훈이었다. 그래서 당 태종과 신하들의 문답집인 정관정요(貞觀政要)를 비롯해서 송나라 사마광의 자치통감(續資治通)과 우리가 삼국지라고 부르는 삼국지연의 등 중국의 여러 고전에 단골로 실려 있다. 입으로는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악한 사람을 등용하는 것은 군주의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착한 사람은 마음이 좋은 사람을 뜻하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선정을 펼치는 벼슬아치를 뜻한다.

주례(周禮) ‘천관(天官)’편에는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인재를 세우는 아홉 가지 방법에 대해서 쓰고 있다. 목민관을 세워서 땅으로 백성의 마음을 얻고, 스승(師)을 세워서 현명함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선비(儒)를 세워서 도(道)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수(藪ㆍ늪과 호수의 담당자)를 세워서 부(富)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목민관이나 스승, 선비, 수(藪) 등이 모두 착한 사람들로서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선정을 베푸는 사람들이다. 이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선비(儒)가 된다. 그래서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부사 시절 향교(鄕校)에서 시험을 보면서, “묻는다. 주례 ‘천관’편에 ‘도(道)로써 민심을 얻는 자를 선비(儒)’라고 했으니 선비라는 이름이 어찌 크지 않은가?”라면서 선비에 대해서 논하라는 문제를 내기도 했다. 정약용은 정조 21년(1797) 6월 곡산부사로 임명되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조는 비록 국왕이었지만 다수당파인 노론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늘어졌고 정약용이 속했던 남인은 소수당파에 불과했다. 노론은 정조의 총애를 받는 정약용을 제거하기 위해 천주교 신자라는 사상검증 공세를 퍼부었다. 정조가 재위 21년 승정원 동부승지로 발탁하자 정약용은 눈물로 자신의 천주교 관계의 전말을 고백한 ‘동부승지를 사양하는 상소’를 썼다. 자신이 한때 천주교를 신학문으로 여겨서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제사를 우상 숭배라고 금지시키자 버렸다는 자기고백 상소였다. 정약용의 연보인 사암(俟菴)선생연보의 정조 21년 윤6월 2일자는 “임금께서 구설이 잠잠해질 때를 기다려 곡산(谷山)으로써 보금자리를 삼으셨다”면서 “어필로 첨서해 낙점하셨다(御筆添書落點)”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약용의 이름이 후보자 세 사람의 명단인 삼망(三望)에 없자 정조가 직접 삼망 옆에 이름을 쓰고 그 위에 점을 찍는 첨서낙점(添書落點)으로 곡산부사로 삼았다는 것이다. 선비 정약용이 곡산부사로 어떤 정사를 펼쳤는지는 정조가 의문사 한 뒤 발생한 일로도 알 수 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노론에서는 정약용을 죽이려고 죄를 얽어 넣었다. 국문장으로 끌려와 고문을 당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정약용을 살린 것은 뜻밖에도 정조 사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했던 노론 정일환(鄭日煥)의 전언이었다. 그가 “정약용이 곡산을 다스릴 때 끼친 칭송이 아직도 자자한데, 만약 사형으로 논한다면 반드시 옥사를 잘못 처리했다는 비방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라고 반대하는 바람에 유배로 낙착되었던 것이다. 곡산부사 시절의 선정이 선비 정약용의 목숨을 건진 셈이다.

인사청문회의 시즌이 돌아오니 부동산, 병역 등등 이 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단골메뉴가 또다시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삼청교육대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라는 그 어두웠던 군부독재 시절의 음습한 이야기까지 기어 나오고 있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용이 날아서 하늘에 있는데 대인을 만나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는 구절이 있다. 훌륭한 임금과 어진 신하가 만나면 세상이 이롭다는 뜻이다. 정조와 정약용의 만남이 용과 대인의 만남이었다. 정약용처럼 정적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선정의 경력은 나오지 않더라도 힘없는 백성들의 피맺힌 원한을 샀던 경력까지 등장하니 세상에 이롭지 않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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