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11시 30분 경찰 112상황실에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정모(44)씨가 “칼을 든 3명이 나를 죽이려 한다. 살려달라”며 휴대폰으로 구조 요청을 한 것. 최초로 사건을 접수한 서울 면목동 상봉지구대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 인근 파출소와 중랑경찰서에 공조 요청을 했다. 강력팀 형사 등 경찰관 20명과 순찰차 8대가 정씨의 신고가 들어온 이동통신사 기지국 주변으로 급히 출동해 일대를 30여분간 샅샅이 수색했지만 정씨는 그곳에 없었다. 칼을 들고 있는 수상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같은 시각 면목본동파출소에는 만취한 40대 남성이 들어와 내부에 있던 민원인들과 근무 중인 경찰관에게 욕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그는 다름아닌 신고전화의 주인공, 정씨였다. 정씨의 신원을 알지 못한 파출소 직원들은 정씨를 타이르며 귀가를 설득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정씨가 바닥에 침을 뱉고 난동을 계속 부리자 경찰관들은 그의 한쪽 손에 수갑을 채워 의자에 앉혔다.
그러던 중 정씨의 휴대폰에 전화벨이 울렸고, 전화를 받은 정씨는 다짜고짜 통화 상대방에게 “개XX” 등 욕설을 시작했다. 곁에 있던 경찰관이 정씨의 핸드폰을 빼앗아 상황을 설명하려는 순간 전화기 너머로 들린 것은 동료 경찰의 목소리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정씨를 찾지 못하자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이윽고 정씨의 핸드폰 통화내역에 수 차례 112로 전화를 건 증거가 나왔고, 휴대폰 번호 조회결과 정씨가 한밤 중 허위신고로 이 일대 경찰의 촉각을 곤두세운 장본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경찰의 추궁에 정씨는 “경찰에 신고를 하면 정말로 출동을 하는지 보려고 파출소에 와봤다”며 고개를 떨궜다.
경찰은 현장에서 정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정씨에 대한 조사를 끝마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112 허위신고, 장난전화를 중대한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사소한 건에 대해서도 반드시 처벌하는 등 강력한 대응을 해왔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지역 허위신고에 대한 처벌 비율은 2011년 15%에서 지난해 78.3%로 크게 늘었다. 그 결과 같은 기간 2,478건이던 허위신고 접수는 474건으로 급감했다.
112 상황실 관계자는 “도움이 절박한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경찰력이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캠페인 등을 통해 허위신고 근절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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