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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서울 속 '마천루 경쟁' 유감

입력
2015.02.0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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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30일 현대차그룹으로부터 한전부지에 대한 개발 구상 및 사전협상 제안서를 접수했다고 1일 밝혔다. 현대차는 제안서를 통해 지상 115층(높이 571m), 용적률 799%로 한전 부지를 현대차 그룹 본사 사옥 등 업무시설과 전시컨벤션 시설, 호텔 및 판매시설 등의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제안 내용에 대해 협상조정협의회를 구성해 사전협상에 착수하고 교통 및 환경 영향 등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다. 사진은 현대차 측이 제안한 한전부지 개발 구상 계획 모형도(안).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지난30일 현대차그룹으로부터 한전부지에 대한 개발 구상 및 사전협상 제안서를 접수했다고 1일 밝혔다. 현대차는 제안서를 통해 지상 115층(높이 571m), 용적률 799%로 한전 부지를 현대차 그룹 본사 사옥 등 업무시설과 전시컨벤션 시설, 호텔 및 판매시설 등의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제안 내용에 대해 협상조정협의회를 구성해 사전협상에 착수하고 교통 및 환경 영향 등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다. 사진은 현대차 측이 제안한 한전부지 개발 구상 계획 모형도(안). 서울시 제공

엘리베이터의 발명이 결정적이었다. 높이의 제약을 벗어난 빌딩은 5층의 마지노선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마천루(摩天樓)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세계 마천루 시장은 미국이 주도했다. 1871년 대화재를 겪은 시카고가 새롭게 들고 나온 건축 형식이 마천루였고, 시카고와 라이벌 관계 도시였던 뉴욕이 본격적인 마천루 경쟁에 뛰어들었다.

뉴욕의 마천루들은 맨해튼의 중간부분인 미드타운과 아래쪽 로어맨해튼에 집중돼있다. 뉴욕을 방문했을 때 지인은 102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대신 70층 높이의 록펠러센터 전망대 ‘톱 오브 더 록’을 권했다. 이유는 엠파이어스테이트 꼭대기에선 엠파이어스테이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맨해튼 마천루 숲 한가운데에 있는 톱 오브 더 록은 인간의 욕망이 이뤄낸 장엄한 스카이라인을 하늘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맨해튼 마천루 중에서 역작으로 꼽는 아름다운 첨탑의 크라이슬러빌딩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 또 뉴요커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센트럴파크도 내려다 보인다. 뉴욕의 아이콘들을 다 만나는 곳은 뉴욕 제일 높은 곳에 있지 않았다.

뉴욕이 마천루 숲을 이룬 배경에는 엄청난 부의 쏠림 외에 맨해튼의 지질 영향도 크다. 거대하고 단단한 암반층이 지표 바로 밑에 떠받치고 있어 100층이 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지하 2층 정도 깊이만 파고도 올라설 수 있었다. 뉴욕의 높은 마천루 단지가 유독 미드타운과 로어맨해튼에 집중된 이유도 바로 그 암반층과 관련이 깊다. 지하 거대 암반층이 지상과 가까이 솟구쳐 오른 부분이 바로 미드타운과 로어맨해튼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건물 하나로 크게 바뀌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물이 쑥쑥 올라가면서 100층 이상 마천루의 남다른 위용을 실감하고 있다. 남산 자락에서도, 멀리 성남의 시가지에서도 불쑥 치솟은 롯데월드타워를 보며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을 잡아 끄는 서울의 새 마천루는 온갖 구설수로 시끄러웠다. 욕망이 부른 시기를 넘어 롯데월드타워는 ‘마천루의 저주’라 불릴 만큼의 악재를 감당해야 했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는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에 2021년 완공을 목표로 571m(115층) 높이의 초고층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롯데월드타워(555m) 보다 16m 더 높게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10조5,500억원을 쏟아 부으며 나라와 그룹의 자존심을 건 통합 신사옥을 짓겠다는 현대차가 롯데에게 최고의 높이를 양보할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그 높이를 그대로 받아들일지 서울시의 선택이 남았다. 땅값의 40%를 기부채납 받을 서울시로선 10조 넘게 베팅한 현대차의 요구를 내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차는 애초 강 건너 성동구 뚝섬 부지에 초고층 GBC를 희망했지만 서울시의 반대로 무산됐고, 결국 한전부지로 계획을 바꿔야 했다. 서울시에게 강북의 뚝섬은 안되고 강남의 삼성동은 되는 이유를 물으니 2012년에 만든 스카이라인관리원칙이란 걸 제시했다. 50층 이상 초고층이 가능한 지역은 도심이나 부도심에 위치하고, 상업ㆍ준주거 시설로 복합건물의 경우 허가한다는 기본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뚝섬이 안된 건 바로 옆의 서울숲 등 서울의 자연자원을 헤칠 가능성이 있고, 도심이나 부도심이 아닌 주거지 인근이라 그 원칙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삼성동 한전부지는 이러한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는 원칙을 지킨 것이라 강변하지만 자신의 동네엔 안된다던 마천루가 강 건너 부자 동네인 강남에서 올라가는 걸 보게 될 강북 주민들 속마음은 그리 편치 않을 것이다.

뉴욕의 마천루 숲도 나름 지하 암반의 배열이란 규칙 위에 올라섰는데, 서울의 이제 본격화하는 마천루 경쟁은 무엇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을까. 10조원 베팅의 대가로 무한의 높이를 허락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욕망의 층수가 더 높이 솟구칠수록 더 짙게 드리워질 그늘이 두려워진다. 정작 자신의 위치를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상 최고 마천루의 꼭대기인데 말이다.

이성원 사회부 차장대우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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