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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가족의 언행

입력
2015.02.0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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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세상을 뜬 아내를 꿈에서 만난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다. 생시와 똑같이 세상 사는 얘기를 하고, 맛있는 것 해먹을 궁리를 하고, 애들 걱정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소스라치면서도 끝내 물어보지는 못한다. 자신의 죽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한 아내에게 영문을 묻는 순간 모든 게 눈 앞에서 사라질 것이 두려워서다. 의식은 이미 오래 전에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상실의 고통이 뒤집힌 ‘존재 원망(願望)’이 잠재의식에는 아직 여전한 모양이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의 쓰라림은 동서고금을 가릴 게 없다. 다만 그 표현은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 한일 두 나라만큼 공간적 거리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는 이문화(異文化)도 드물다. 20년 전 대지진이 휩쓴 고베(神戶)에서 만난 유가족들의 한결같이 차분한 반응에서 느꼈던 놀라움은 그 사이 많이 무뎌졌다. 시간의 흐름이 빚은 감각의 풍화(風化)가 아니라 반복 노출에 따른 감각의 둔화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슬람국가(IS)’에 살해된 고토 겐지(後藤健二) 유가족의 자세는 신선했다.

▦ 특히 78세의 노모가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던진 메시지는 놀라웠다.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언급과 “너무나 비참한 죽음 앞에 할 말이 없다, 지금은 그저 슬퍼서 눈물을 흘릴 뿐”이라는 말은 상식적이다. 그러나 “‘전쟁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전쟁과 빈곤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는 겐지의 유지(有志)를 이어가고 싶다”는 말은 범상치 않다. 더욱이 “슬픔이 증오의 연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는 첨언은 아들을 가슴에 묻은 노모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 고토의 피살 소식에 우선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던 용감한 프리랜서 기자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또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이끌어 온 일본 우파의 ‘보통 국가’ 숙원이 실현 궤도에 오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예상대로 아베 총리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집단적자위권의 범위 확대나 자위대의 해외 무력사용 등에 대한 의욕을 내비쳤다. 그러나 슬픔이 증오로 번질 것을 미리 견제한 유가족의 통찰에, 당분간 일본에 민족주의 광풍(狂風)이 일지는 않겠다고 안도할 수 있었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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