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는 눈 뜨면 아들 기저귀 가는 일로 시작해 대개 야밤 설거지로 마무리된다. 이런 날들의 반복이다 보니 아들 태어나기 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은 상당부분 사라졌고, 어떤 면에서 삶은 좀 팍팍해졌다.
대단한 취미생활자로 보일 수도 있겠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작은 즐거움이라고 해 봤자 휴일 아침 동네 뒷산을 마음 놓고 누빈다든가 소파 팔걸이에 커피 한잔 놓고 쏟아지는 햇살을 맨발등으로 느끼며 볼륨 높여 음악 듣는 일 정도다. 이제 이 아빠에게 그것들은 사치 중에서도 상사치가 됐다. 정말이지 언제 뒷산에 올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극장 간 지는 백만년 정도 된 것 같다.
물론 육아휴직자로서 지금은 아들을 무탈하게 키우는 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이 아빠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단순 반복되는 일상에 심신은 나른해지고 게을러진다. 지친다는 이야기다. 틈나는 대로 아들과 여행 다니는 것은 육아 고통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한 것이고, 불러주는 결혼식이나 모임에 (고마워하며!) 거의 100% 출석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거기 가면 육아 피로 회복제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실제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만나면 약간 도움이 된다. 액세서리처럼 데리고 다니는 아들을 향해 날려주는 ‘많이 컸네!’같은 인사에서 ‘내가 아들을 부실하게 보진 않았구나’하는 사실을 확인 받아 우쭐거리기도 하고,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 섞여 이야기 하면서 축 늘어진 몸 속 세포들에게 긴장감도 다시 불어 넣는다. 또 빌딩숲 사이 길을 지날 땐 진짜 서울 거리 모습에(지긋지긋하던 그 풍광에!) 설레기도 한다. 오랜만에 다시 보고 들은 것들은 머리 속에서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 다짐들을 하게 한다. ‘아들이랑 더 열심히 놀아줘야지, 더 즐겁게 해줘야지, 더 튼튼하게 키워야지.’
하지만 이 생각은 돌아오는 길, 딱 거기까지다.(이것도 참 이상하지?) 집에 들어서면 언제 그런 작심을 했냐는 듯 몸은 다시 무기력해진다. 아들을 대동한 외출에서 비롯된 피로가 원인일 수 있겠다 싶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이 아빠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단순 반복적인 일 때문이다. 밥해서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읽어주고, 재우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그런데 머리는 그 이유에 대해 또 생각한다. 아들을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는 일을 내가 그 일을 그토록 싫어한단 말인가? 했던 일을 또 해야 해서 피로해진다고? 멀리 놀러 가서 그 반복적인 일을 하면 피곤하지 않고?
이번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의심하게 된다. 아들 장난감과 그림책이 거실과 베란다를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이 아빠의 휴식 공간은 좁아졌고, 갑갑함을 느끼는 이 아빠는 집에만 들어오면 특별한 이유 없이 피곤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비교적 근거 있는 의심이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 속으로 이런 계획도 세워본다. 좀 더 넓은 데로 이사를 가자, 없는 가구지만 가구를 재배치 하자, 아니 아예 바꿔 볼까 그래 저 벽은 칠을 해서 포인트를 주는 게 좋겠어! (아기 엄마들의 집안 꾸미기가 ‘취미’가 아니라 육아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지만 모두 만만찮은 비용과 시간이 수반된다는 사실이 오버랩되면서 결국 그냥 없던 일로 된다. 그렇지만 사그라지지 않은 생각이 하나 있다. 설거지와 청소, 빨래 모든 집안일을 미루고 있다가 퇴근한 아내에게 아들을 턱! 맡기고 아무 말 없이 휘리릭! 집을 나가서는 휴대폰을 땋! 꺼버리는…. 분명 큰 돈, 큰 시간 들이지 않고 이 육아 권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긴 할 텐데, 이 아빠는 오늘도 참는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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