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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미술의 현주소, 아트선재센터에 펼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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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미술의 현주소, 아트선재센터에 펼쳐져

입력
2015.02.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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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떨이·스팸메일로 관객과 소통… 수용성이 중요한 현대미술의 극단

히만 청의 전시장은 그야말로 휑뎅그렁하다. 관람객에게 공간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히만 청의 전시장은 그야말로 휑뎅그렁하다. 관람객에게 공간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두 개의 전시가 개막했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아트선재센터에서 5일 시작한 싱가포르 작가 히만 청의 ‘절대, 지루할 틈 없는’과 동아시아 4개국 작가 12명의 콜라보 전시 ‘불협화음의 하모니’가 그것이다.

히만 청은 글 쓰는 미술가로 이미지, 설치, 상황, 텍스트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주목 받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그가 쓴 짧은 소설에서 비롯되는데 중년의 위기를 맞은 가상의 전시공간을 의인화했다. 미술과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면을 살피는데, 때문에 지난 전시작 철거 과정에서 생긴 찌꺼기들이 바닥에 널려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트선재가 선보인 89개의 전시 제목으로 포스터를 만들고, 관람객에게 등돌린 채 환영인사를 하는 현수막을 제작함으로써 무엇인가를 억지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뜻을 보여준다.

담배를 피우느라 전시장 밖에서 시간을 소비하는 관람객을 관찰한 작가는 전시장 한 켠에 양푼 같은 재떨이 한 쌍을 놓았다. ‘아름다운 불꽃이 사그라질 때는 연기가 당신 눈에 들어간다’는 시적인 말이 작품 설명의 전부. 작품 이름은 ‘끓는점’이다.

일상의 작은 것에 주목하는 작가는 스팸 메일을 벽 한 켠에 걸어두고 ‘낯선 이로부터의 이메일(자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라라는 인물이 보낸 이메일은 ‘자기 안녕’으로 시작해 우리가 친구가 되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저 오늘의 ‘안녕’ 인사가 내일은 우정이 될 수도 있잖아 하면서 유혹한다.

작가는 “예술가는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은 싫어하지만 새로운 행위를 하는 것은 좋아한다”며 자신이 보여주는 것보다 관객이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척 봐서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의미를 내포한, 그래서 작품보다는 관객의 수용성이 더 중요한 현대미술의 극단을 보여주는 전시다.

‘불협화음의 하모니’는 아시아의 현재를 예술적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이해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한국, 일본, 중국, 대만 4개국 기획자가 참여했다. 지리적 인접성과 역사적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지평을 공유하지 않은 4개국의 개별성에 주목하면서 냉전 이후 사회를 압박하는 위계질서가 어떤 식으로 뻗어나갔는지를 살핀다.

덩자오민의 ‘타이베이 올림픽 2024’는 가상의 올림픽 포스터로 올림픽이 내포한 불안하고 불순한 의도를 꼬집는다.
덩자오민의 ‘타이베이 올림픽 2024’는 가상의 올림픽 포스터로 올림픽이 내포한 불안하고 불순한 의도를 꼬집는다.

대만 작가 천제런이 제작한 영상물 ‘엠파이어스 보더 II - 웨스턴 엔터프라이즈 아이엔씨’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대만 국민당의 협력사업 중 하나로 중국 본토를 기습하기 위한 반공구국단 웨스턴 엔터프라이즈 아이엔씨에서 훈련 받은 자신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당시 현실을 재구성한다. 홍콩 작가 량즈워는 홍콩 입법부 건물 앞에서 시위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응원하며 찍은 사진 다섯 장에 메시지를 적고 그것을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비춘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를 출품했다. 지리적ㆍ경제적ㆍ정치적 이유로 올림픽 개최가 불가능한 자국의 현실을 표현한 대만 작가 덩자오민의 ‘타이베이 올림픽 2024’ 역시 정치적으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일본 작가 다카미네 다다스가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춤판을 벌이며 일본의 원전 정책을 비판한 ‘재팬 신드롬-후쿠시마 이후의 미술과 정치’나 실제 자신의 애완거북이를 영화 ‘엑소시스트’의 귀신 들린 여주인공으로 치환해 놓고 한달 간 관찰해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억압과 규율을 우스꽝스러운 그림으로 표현한 치바 마사야의 ‘거북이의 삶#4 당신은 저주받지 않았다’, 번역을 통해 언어가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퍼포먼스로 보여준 중국 작가 저우자오의 ‘중국어는 언어가 아닙니다! 존 핸슨 끼어들다’ 등은 발랄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작가로는 함양아, 김소라, 구정아씨가 참여했다.

주한독일문화원의 제안으로 시작한 이번 전시는 일본 히로시마와 대만 타이베이에서도 이어질 예정이다. 6ㆍ7ㆍ12일에는 큐레이터 토크와 아티스트 퍼포먼스, 동아시아 현 상황과 미래에 관한 담론의 장이 마련된다. 자세한 일정은 www.goethe.de/harmony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전시 모두 3월 29일까지. (02)733-8945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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