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파트 뒤편서 9층 높이 옹벽 붕괴…경비원 신속신고·대피 방송
"혈압약을 챙기러 다시 집에 돌아가니 토사가 아파트 입구까지 밀려왔더라고요. 대피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어떻게 됐을지…아찔했죠."
광주 남구 봉선동 대화아파트 뒤편에 설치된 대형 옹벽이 붕괴돼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주민들이 붕괴를 최초로 인지한 것은 5일 오전 3시 30분쯤.
이날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던 이 아파트 103동 주민 박모씨는 갑자기 '쿠르릉' 소리가 연달아 들리자 놀라 밖을 내다봤지만 캄캄한 어둠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시 후 불빛이 반짝이더니 긴급 대피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왔고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각 집마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박씨는 "남편과 서둘러 아파트 밖으로 피신했을 때만 해도 주차장쪽에 큰 피해가 보이지 않았으나 혈압약을 챙기러 다시 집에 들른 2∼3분 사이 토사가 갑자기 아파트 입구까지 밀려들었다"고 말했다.
경비원의 신속한 신고와 초동 조치가 큰 피해를 막은 셈이다.
굉음 소리에 지진인 줄 알고 지하로 대피했던 경비원 강모씨는 소리가 멈추자 밖으로 나가 상황을 파악, 오전 3시 49분께 119 신고 접수를 완료했다.
이어 관리사무소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하고 주민들에게 대피 안내 방송을 실시했다.
3시 54분께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고 피해 현장을 확인하는 한편 경찰과 함께 옹벽 바로 앞 103동 주민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대피를 유도하고 실내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4시 50분께는 인근 초등학교에 대피소를 마련하고 이동 차량을 아파트 앞에 대기시켰다.
굉음에 잠에서 깼지만 무슨 일인지 잘 모르거나 무서워서 바깥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집 안에 머물러 있던 사람은 물론 한밤중에 깊이 잠들어있던 주민들은 강씨의 안내 방송과 소방관들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안전하게 밖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사고가 난 옹벽은 높이 15m, 길이 200m 규모로 이중 30여m가 붕괴돼 콘크리트와 토사와 함께 옹벽 주변에 주차된 차량들을 덮쳤다.
오르막길 쪽은 아파트 9층 높이까지 옹벽이 설치돼 있고 1층이 낮아 토사가 빠른 속도로 더 많이 흘러내렸다면 저층부는 물론 중간층까지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의 피해 신고 현황과 폐쇄회로(cc)tv에 따르면 현재 차량 7대가 흙더미에 완전히 매몰됐고 오토바이 2대, 차량 16대가 파손되는 등 총 23대가 피해를 당했고 인명피해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추정됐다.
주민들은 오전 4시 50분께 5세대, 13명 이어 오전 9시를 전후해 총 23명이 인근 초등학교와 경로당에 대피소로 이동했으며 다른 주민들 역시 인근 친인척집으로 대피하거나 회사로 출근하는 등 103동에 거주하는 105세대 주민들은 모두 대피했다.
해가 뜨면서 토사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고 육안으로 1차 안전진단을 한 결과 2차 붕괴가 우려돼 102동 주민들도 대피 중이다.
이 대형 옹벽은 경사가 90동 달하지만 급경사지 관리 대상에서 사실상 빠져 있고 재해위험도 평가에서도 A∼E 등급 중 B등급(위험성은 없으나 관리 필요)으로 분류되는 등 인명피해 위험시설로 지정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지난해 여름 옹벽에서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가 심하게 들린다는 민원때문에 배수로 작업을 한 것 외에는 행정기관이 옹벽에 대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행정당국은 추가 붕괴 위험을 막기 위한 사전 작업과 전기 설비 점검 등을 실시한 뒤 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구조 작업 등을 진행할 방침이다.
한편 전체 3개 동, 315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는 1993년 9월 준공됐으며 아파트를 둘러싼 옹벽도 같은 시기 구축됐다.
연합뉴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