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배경 지목된 파리 제 19구, 중산층 떠난 뒤엔 이민자가 메워
이민정책 실패 vs 도시정책 문제, 파리 분위기와 동떨어진 고립감
이민자 일부의 일탈 시각이 우세, 경제적 소외·이민 배경 상승작용
지난달 프랑스 파리 도심의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침입해 이 주간지 편집장과 만평가 등 십여 명을 살해한 사이드 쿠아치(34), 셰리프 쿠아치(32) 형제는 알제리계 부모 아래서 자란 프랑스 시민권자였다. 이들이 테러를 벌인 다음 날 파리에서 경찰관을 쏴 숨지게 하고 유대인 식표품점을 노리고 들어가 인질 살해극을 벌였던 아메디 쿨리발리(32) 역시 세네갈 출신의 이민자 2세대였다.
공통점은 또 있다. 이들은 모두 이민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빈민지역인 파리 제19구에서 일상을 보내며 이 지역 이름을 딴 ‘파리 제19구 네트워크’에 가담했다. ‘파리 제19구 네트워크’는 2000년대에 결성된 프랑스의 자생적 테러조직으로 알카에다에 가입하려는 프랑스 국적자들을 모아 이라크나 시리아에 보내왔다. 조직의 모임 장소가 파리 북동부 제19구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고, 조직원들이 체력 단련 장소로 이용하던 이 지역의 뷔트 쇼몽 공원 이름을 따 ‘뷔트 쇼몽 네트워크’로도 불린다고 한다.
파리 연쇄 테러의 범인들이 이렇게 공통적으로 이민 배경을 지닌데다 파리 제19구 네트워크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번 사건이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가 그 동안 시행해온 이민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출입 꺼리는 우범지역 파리 제19구
파리의 행정구역은 제1구부터 제20구까지 총 20개의 구로 나뉜다. 북동쪽에 위치한 제19구는 저소득층 이민자가 주로 거주하는 파리의 낙후 지역이다. 주민들의 대다수는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이나 흑인 이민자다. 오래된 고층 아파트 주변으로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실제로 파리의 대표적인 우범지역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12년 이곳을 강ㆍ절도 등 폭력 범죄나 마약, 지하경제 문제 등이 빈발한다며 치안우선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주류 프랑스인들은 이러한 분위기 탓에 파리 제19구 출입을 꺼린다.
이번 테러의 범인들은 모두 이 파리 제19구에서 생활한 적이 있고 이곳에서 이슬람 급진주의 모임에 가담하여 테러리스트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 탓에 ‘테러-파리 제19구-이민자’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프랑스 정부가 파리 제19구에 거주하는 이민자를 방치했기 때문에 테러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이민이 테러와 직접 연결돼 있진 않지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앞으로 이민 문제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테러 이후 프랑스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더욱 힘을 얻고 있으며 반이슬람 정서가 프랑스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테러의 원인을 이민정책의 실패에서 찾고, 프랑스 이민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이민국가다. 19세기부터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이민자 출신이 프랑스 주류층으로 성공하여 프랑스의 발전을 이끈 경우도 많다. 역대 프랑스 정부는 대체로 이민자들을 프랑스 사회에 융화시키려는 다인종ㆍ다문화 중심의 정책을 중시해왔고 이들에 균등한 기회를 주려고 애썼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은 이민 가정 출신이지만 프랑스를 대표하는 주류 인사다. 빈민층에 속하는 이민자 대다수는 프랑스 정부에 반감을 가지지도 테러를 동경하지도 않는다.
조화 못 이룬 도시정책이 문제 키워
이번 테러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파리 제19구’는 이민정책의 문제라기보다는 도시정책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파리 제19구는 행정구역상 파리 내부이지만, 지역의 분위기와 성격은 파리 외곽 방리유들과 유사하다. 방리유는 대도시 외곽 지역을 의미하는데, 대도시 인근이어서 우선 교통이 편리하고 집세가 저렴한 낡은 소형 서민임대주택(HLM)이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많은 주택이 파괴된 프랑스는 전후 베이비붐, 농촌 주민의 도시 이주, 외국인 근로자 유입 등으로 도시 지역 주택이 크게 부족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프랑스 정부가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HLM 보급 사업이었다. 1950, 60년대에 도시 곳곳에 건설된 HLM은 당시에는 근대적인 주거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획일화된 공간에 싫증을 느낀 프랑스 중산층들은 그 건물을 떠났고, 노후화까지 겹치면서 가난한 이민자 가족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파리 제19구에도 도시 빈민층이 모이는 이런 HLM 지대가 존재한다. 게다가 제19구에 접한 파리 외곽에는 보비니라는 낙후한 방리유까지 있다. 공권력이 개입을 꺼릴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지역이다. 파리 제19구는 전체적으로 이 보비니의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한마디로 제19구는 화려한 수도 파리 내에 있지만 파리의 일반적 분위기와 동떨어진 고립되고 암울한 게토 같은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젊은이들은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암울한 미래를 불평하며 급진주의나 극단주의 주장에 부화뇌동하기 쉽다. 이민자이기 때문에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경제적 형편을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이민 배경이 널리 공유되고 있을 뿐이다.
이민자 위한 긍정적 차별정책 필요
경제적 소외와 이민 배경이 결부되거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이민정책을 세우는 당국자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민 가정 출신 자녀가 프랑스 가정 출신 자녀에 비해 취업률이 낮고 실업률이 높다. 프랑스 통계청이 2004년 이들 가정 자녀의 학교 졸업 3년, 5년 후 취업률ㆍ실업률을 조사한 결과, 이민 가정 자녀의 평균 취업률ㆍ실업률이 프랑스 가정 자녀에 비해 모두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자들에게 가난이 대물림 되지 않도록 이들을 위한 긍정적인 차별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민 가정 자녀가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경우 구직에서 프랑스인 자녀보다 크게 불리한 상황이지만, 스페인 등 남유럽 출신의 경우 주류 프랑스인 가정과 비교할 때 별로 차이가 없다.
프랑스 이민정책의 실패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국적을 보유한 이민 2세들의 사회 부적응 문제를 자주 거론한다. 프랑스는 이민 1세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프랑스 국적이 있는 이민 2세도 이민자 출신으로 사회통합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간주한다. 최근 프랑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이민자 관련 소요 사태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던 이민 2세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에서 이민 1세와 이민 2세를 합한 이민자 가정 인구는 전체 인구의 6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 18세 이하 이민자 가정 자녀 숫자는 2011년 기준으로 275만명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프랑스 사회에 잘 적응해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적응자의 불만 표출이 프랑스 사회 전체를 불안에 떨게 할 정도로 과격하고, 사회 전반에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이민 2세의 일탈은 심각한 사회문제임에 틀림없다.
프랑스의 이민 2세 문제는 이민 가정 자녀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최근 발생한 프랑스의 이민자 관련 사건ㆍ사고들은 이민자 전반의 지지를 받았다기보다 일부의 일탈로 볼 부분이 더 많다. 프랑스 정부도 파리 테러 등 여러 사건을 이민정책의 실패라고 결론짓지 않고 있다.
오정은 IOM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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