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외환 노조의 가처분 신청 수용 "합병절차 6월 말까지 중단하라"
통합 절차 장기화될 수도
법원이 하나금융지주가 추진 중인 하나ㆍ외환은행의 조기 합병 절차를 6월 말까지 중단하라고 4일 결정했다. “2012년 ‘향후 5년간 외환은행 독립경영을 보장한다’는 노사 합의를 하나금융이 어기고 있다”는 외환은행 노조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결과다. 법원 결정을 두고 논란이 이는 가운데, 조기 합병에 사활을 걸어 온 하나금융은 충격에 빠졌다. 합병 절차 장기화가 불가피해지면서 암묵적으로 사측 논리를 지원해 온 금융당국에도 비난이 쏠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조영철 부장판사)는 이날 외환 노조가 지난달 19일 일방적인 통합 절차를 중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오는 6월30일까지 외환은행의 본인가 신청 및 합병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를 열지 말 것과 하나금융의 합병 승인을 위한 주총 의결권 행사를 금지할 것을 명령했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하나금융과 외환 노조가 작성한 이른바 ‘2ㆍ17 합의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하나금융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한 직후, 노사는 ▦향후 5년간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을 보장하고 ▦인위적 인력감축과 교차 발령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 입회 하에 작성했다.
재판부는 ‘단체협약은 강제적이거나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않으면 효력이 인정되고, 협약 이후 사정이 크게 달라져 협약 이행 시 부당한 결과에 이를 경우에 한해 사용자가 협약과 다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조기 합병 추진에 반대하는 노조의 행위는 경영권 침해’라는 사측 주장에 “합의에 의한 한시적인 합병 연기는 본질적인 경영권 침해가 아니다”고 밝혔고, “2ㆍ17 합의가 강제적이거나 사회질서에 반한다고도 볼 수 없어 효력이 여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합병을 미룰 경우, 금융환경 급변 속에 외환은행의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사측 주장에 대해서도 “2013년 이후 오히려 실적이 개선되고 있어 당장 생존이 위태롭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내년 3월까지 관련 절차를 중단시켜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는 “조기 합병 자체가 불합리하다기보다 기존 합의서의 구속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이므로, 향후 (합의 변경에 필요한) 상황변화를 다시 따져보기 위해 가처분의 효력은 올 상반기까지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사측의 논리 대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조기 합병의 필요성은 6월 이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판단인 것이다.
이날 법원 결정으로 하나ㆍ외환 조기 통합 절차는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하나금융은 지난달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합병 예비인가 승인 신청을 조만간 철회키로 했고, 금융위 역시 “본 인가 절차가 열리지 못하면 예비인가 승인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며 한발 물러섰다. 법원이 언급한 ‘조기 합병이 불가피한 상황 변화’는 6월 이후에도 사실상 인정 받기 어려운 상황. 결국 재차 소송을 통해 다른 법원 결정이 내려지거나 노사 합의에 획기적 진전이 있지 않는 한 조기 합병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당초 가처분 기각을 자신하던 하나금융은 패닉 상태다. 하나금융 측은 “선제적 위기 대응이 없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금융산업의 특성을 법원이 간과한 것”이라고 반발하며 가처분 이의 신청 제기 등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현실적인 해법은 그간 갈등을 지속해 온 노조와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인데, ‘가처분 승리’에 고무된 노조가 쉽게 협상에 응할지 역시 미지수다. 노조 측은 “사법부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며 “향후 경영진의 태도에 따라 대화 재개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2월 중 예비인가를 승인하겠다”(신제윤 금융위원장)고 밝히는 등 최근 하나금융의 강공 드라이브에 우회 지원 입장을 보였던 금융당국에도 책임론이 이는 가운데, 이번 가처분 사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노사합의는 존중돼야 하지만 은행업계의 위기를 외면한 채 벼랑끝 전술로 일관하는 노조의 태도와 그 주장을 법리로만 인정한 법원 결정 모두 안타깝다”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하나금융, 버티는 노조, 시간만 끈 금융당국 모두 패자로 금융산업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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