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메아리] 광우병 파동, 어디서 시작됐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광우병 파동, 어디서 시작됐나

입력
2015.02.04 18:20
0 0

이 전 대통령 회고록, 전 정부 책임 전가

노 전 대통령, 합의 결단 왜 못 내렸나

정권 이양기 협의 부재가 진짜 원인

자화자찬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지만 미국산 쇠고기 개방 협상에서는 그의 회한이 두드러진다. 광우병 파동만 없었다면 국정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다. 532만표 차로 집권한 첫해 국정지지율이 20% 초반까지 급락했으니 그럴만하다. 그래서인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쇠고기 개방협상 파트의 소제목이 ‘노 대통령의 거절’로 돼 있을 정도로 전 정권에 대한 책임 전가가 직설적이다.

회고록을 통해 제기된 노무현 전 대통령 책임론의 핵심은 쇠고기 개방의 범위와 시기 문제다. 노 전 대통령이 월령 제한 없이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이면합의를 했으며, 재임 중에 마무리하기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타결에 따라 발표한 2007년 4월2일 대국민담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 권고를 존중해 합리적 수준에서 개방하며 합의 절차를 합리적 기간에 마무리하겠다’는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를 미국측이 쇠고기 수입과 절차 이행에 관해 기한을 정한 문서화를 요구한 데 대한 적절한 타협책이라고 자평한 뒤, 미 측의 문서화 요구는 ‘기한을 정한 무조건적 수입의 약속이나 이면계약이라 해서는 안 된다’고 부연했다.

미국은 한 달 뒤 광우병 위험 통제국이 됐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은 담화 내용을 충분히 인용하고도 유독 ‘기한을 정한 무조건적 수입의 약속이나 이면계약이라 해서는 안 된다’는 핵심부분을 회고록에서 누락했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기술(記述)이다. 유출된 미국 문건에 적시됐다는 ‘모든 월령 수입’내용에 사로잡혀 의도적 누락을 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와 관련해 담화 사흘전인 3월29일 노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미 대통령의 통화를 들었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아시아 여타 국가들과의 형평성에 맞추겠다는 취지를 전달했다고도 한다. 월령 20개월까지 살과 뼈를 수입하는 일본과 30개월까지 살만 수입하는 대만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송 전 장관은 3일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이 전 대통령이 전 정부의 기록이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미국 쪽 이야기만 듣고서 한 실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개방 시기로 보면 노 전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퇴임 1주일 전인 2008년 2월18일 노 전 대통령을 만나 임기 중 마무리를 부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 타결에 맞춰 미 의회가 FTA를 비준해준다는 보장도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1주일 내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 측 일부는 임기 중 처리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두 달 전인 2007년 12월24일 우리 총리와 외교장관, 통상본부장 등은 30개월 미만의 살코기와 뼈 수입을 개방하고, FTA비준은 미 정부가 책임지도록 노 전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미국과의 약속이 없었다면 총리 등이 이런 건의를 할 이유가 있을까? 당시 “노 대통령은 ‘왜 나에게 이런 좋지 않은 부담을 주느냐’며 굉장히 화를 냈다”는 게 송 전 장관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 회고록에 노 대통령이 ‘FTA로 친구마저 잃었는데 쇠고기 협상으로 더 많은 친구를 잃어야 하느냐, 피도 눈물도 없느냐’고 했다는 대목도 있다. 17대 대선 대패의 낭패감과 자신의 평판 훼손, 2008년 4월 총선에 미칠 악영향 등이 복합된 분노 표출로 해석된다.

가정이 부질없긴 하나 노 전 대통령이 통 큰 결단으로 당시 총리 등의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이명박 정부 초기 쇠고기 개방 부실합의에 따른 국가적 대혼란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당선자 측과의 조율을 통한 공동책임으로 쇠고기 개방 문제를 풀 생각은 왜 못했을까?

크게 보아 여야가 뒤바뀌는 정권 이양기에 양측 모두 그럴 자세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바로 그 사각지대에서 광우병 파동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뒷짐을 지는 사이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소통과 정책협의 채널 등 정권교체 매뉴얼의 재점검이 새삼 필요한 까닭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