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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서도 찰칵~ 인증샷 안 찍으면 잠이 안 와요

입력
2015.02.0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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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의자에 앉자마자 증거 사진, 커뮤니티선 학생·사원증 증명하기

사회적 메시지 전달에 긍정적 효과… "지나친 업로드는 과시욕" 우려도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있는 취업준비생 김지수(25ㆍ가명)씨는 스스로를 ‘인증샷 중독’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오전 9시에 도서관을 찾는 김 씨가 자리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인증샷 촬영. 책과 필기도구를 꺼내놓고 자신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증거사진을 남자친구에게 전송한 다음,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올린다. 공부, 점심식사, 다시 공부, 그리고 귀갓길, 여기에 친구들과 모임자리까지 하루의 모든 일상이 인증샷으로 기록된다. 김 씨의 인증샷은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운 자신의 얼굴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어 하루를 기록한 수십 장의 사진 중 잘나온 사진을 골라 SNS에 올린 후에야 그녀의 일과는 완전히 마무리된다. 김 씨는 “인증샷은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사진 한 장이면 설명이 되는, 매우 편리하고 간편한 소통방식이다”라며 예찬론을 펼치면서도 “음식이 눈 앞에 있을 때 ‘맛있겠다’보다 ‘우선 (사진을)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내가 가끔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했다.

본지가 20~30대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인증샷 이용행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무려 98%(196명)이 촬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의 등장으로 촬영 즉시 사진전송이 용이해지면서 시작된 인증샷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등 SNS의 발달로 전성기를 맞았다. 인증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이제 2030세대의 일상화된 소통방식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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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젊은이들에게 '인증샷'은 개인적 일상기록이나 의사소통을 넘어 사회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 앞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전혜원 기자 iamjhw@hk.co.kr
20~30대 젊은이들에게 '인증샷'은 개인적 일상기록이나 의사소통을 넘어 사회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 앞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전혜원 기자 iamjhw@hk.co.kr

여행을 갔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길에서 연예인을 봤을 때, 언제 어디서나 인증은 이루어진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얼마나 자주 인증샷을 촬영하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51%)이 ‘일주일에 한번 이상’이라고 응답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도 10%나 됐다. 서울 홍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43)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식사는 뒷전이고 다들 사진 촬영에 바쁘다”며 “음식을 만든 입장에서는 행여 식어서 맛이 없어질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일상 속으로 들어온 인증샷은 개인적인 일상기록이나 의사소통을 넘어, 사회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예컨대 각종 선거날 투표장 입구에서 찍는‘인증샷’은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젊은 세대의 선거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며 투표율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투표용지까지 보여줘 선거법 위반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어쨌든 투표 인증샷은 갈수록 떨어지는 젊은 층의 투표참여율을 끌어올림으로써 대의민주주의 유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루게릭병 환자들을 후원하는 기부 캠페인 ‘아이스버킷 챌린지(얼음물 샤워)’는 원래의 규칙과 달리 국내에서는 얼음물을 끼얹는 영상이 곧 기부 인증 영상이 되며 널리 퍼졌다. 올해 1월에는 소셜커머스 위메프가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채용취소 논란을 빚자, 탈퇴 인증샷을 통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기도 했다.

인증샷을 통한 메시지전달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억류됐다가 끝내 참수당했던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의 석방을 기원하는 ‘나는 겐지다(I AM KENJI)’캠페인이 인증샷 행렬로 전개되기도 했다. 인증샷을 통한 '집단행동'은 각종 서명운동이나 지지 댓글 행렬보다도 훨씬 강렬한 효과를 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젊은 층의 과도한 인증샷 몰입은 크고 작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신입사원 강현종(29ㆍ가명)씨는 절대 인증샷을 찍지 않는 케이스. 길었던 백수시절을 지나 마침내 취업에 성공한 기념으로 자랑 삼아 올렸던 회사 사원증 인증샷 때문에 최근 크게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평소 즐겨 찾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너도나도 본인의 학생증이나 사원증 사진을 올려 학력과 직업이 실제임을 증명해 보이는 ‘인증대란’에 참여했던 강 씨의 인증샷이 마침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던 회사 상사의 눈에 띤 것. 평소 인터넷을 통해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던 그에게 상사는 ‘혹시 그 글 속에 나오는 무개념 상사가 내가 아니냐’ ‘혹시 인터넷에서 뒷담화를 당할까 일을 못 시키겠다’며 눈치를 줬다. 결국 모든 글을 삭제하고 사이트에서 탈퇴했다는 강 씨는 “별 생각 없이 재미로 올린 인증샷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지 몰랐다”며 “혹시 또 다른 회사 선배나 동료가 내가 올린 글을 봤을까 무섭다”며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젊은 세대들의 인증샷은 개인의 기록이나 기념, 메시지 전달 수단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바깥에 드러내는 ‘과시’에 가깝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주로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인증샷을 촬영한다”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이것 봐라’하고 내세우기 위한 욕구의 반영”이라고 설명했다. 인증샷을 올림으로써 타인에게 인정받고 또 주목 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는 인증대란에서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문대와 대기업, 전문직 같은 소위 잘나가는 이들의 인증샷만 올라온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특히 청소년 시기를 인터넷 공간에서 보내며 ‘디지털 사회화’가 된 청년세대들에게 인증샷은 현실에서 미처 채우지 못한 정서적인 지원과 공감을 사이버공간에서 이뤄내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대학생 전모(26)씨는 “대학입학 후 적응에 실패해 휴학을 하고 한창 힘들었을 때 인터넷에 대학인증을 하니 다들 부러워했다. 그런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니까 기운이 나서 이후로도 종종 인증을 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이 경우 남들에게 보다 큰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일부러 더 자극적인 인증샷 등을 추구할 가능성도 있고, 그런 만큼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의도하지 않은 일탈로 번질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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