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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에 오염된 블로그… 클린블로거 인증제가 필요해!

입력
2015.02.0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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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주도 세력이 된 파워블로거… 광고 빌미 돈 밝히고 무전취식

업체들은 협찬 미끼로 후기 요청, 한 번 포스팅 대가 수십만원 호가

사소한 트집 잡지만 실제론 홍보글, 네티즌 등치는 수법도 계속 진화

돌을 갓 넘긴 아기를 둔 최지희(36)씨는 아기 식탁 의자를 사려고 인터넷으로 후기를 검색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쿠션이 좋고 친환경 페인트를 칠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등 상세한 후기에다 한눈에 알 수 있는 제품 조립방법까지 담은 블로그를 발견하고는 이거다 싶어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여지없이 제품을 협찬 받고 후기를 올렸다는 꼬리말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자세하고 생생한 제품 후기를 얻기 위해 블로그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시간만 낭비했다”며 열 건을 검색하면 열 건 모두가 물품을 공짜로 받고 올린 후기일 정도로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후기처럼 보이는 생생한 광고

유아용품이나 생활용품, IT 기기, 맛집, 성형외과처럼 시술이 많은 병원 등은 입소문이 특히 중요하다. 업체들도 이 점을 간파해 돈이 많이 드는 TV나 신문 광고보다 실제 제품을 사용한 후기처럼 보이는 광고 글을 돈이나 물품을 주고 사는 걸 선호한다.

협찬 물품 포스팅은 택배가 도착해 포장을 여는 과정에서 시작하며 물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고 실제 사용 경험을 세세하게 올리는 식으로 이뤄진다. 해당 업체는 대개 제품당 3, 4개의 포스팅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며 사진의 개수나 특별히 강조할 내용 등의 지침까지 내린다. 이렇다 보니 솔직한 후기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사적 영역으로 일컬어지던 개인 블로그까지 상업화한 것이다.

문제는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영향력이 큰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을 뜻하는 파워블로거(power blogger) 다수가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 더 이상 웹 상에서 순수한 정보 공유 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블로그와 미니홈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1인 미디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파워블로거가 새로운 여론 주도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IT 같은 전문분야에서는 제품을 빨리 구매하고 리뷰를 올리는 파워블로거의 한마디가 곧 업체의 정책 방향까지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부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나 파워블로거의 홈페이지에서 한번 눈 밖에 난 생활용품은 반드시 사장된다는 법칙도 통용된다. 때문에 파워블로거는 정식 매체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악성 블로거의 횡포를 다룬 SBS 뉴스 캡처.
악성 블로거의 횡포를 다룬 SBS 뉴스 캡처.

▦’파워블로거지’의 탄생

이태원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최근 손님 일곱 명이 와서 메뉴판에 없는 술을 시켜놓고는 “우리가 누군 줄 아느냐. 파워블로거 모임을 하는 중이다”며 옆 가게 가서 술을 빌려오라는 등 황당한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맛집으로 알려진 한 레스토랑 주인은 “뉴욕으로 유학 간 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식사하는 콘셉트로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니 4인분을 준비해달라는 식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종종 자신이 파워블로거라며 공짜 음식을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악평을 올리겠다는 협박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인터넷을 달군 전주 무한리필 고깃집 사건은 파워블로거의 횡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북 전주의 한 무한리필 고깃집을 다녀온 파워블로거가 “겨우 고기 다섯 점을 먹었는데, 주인이 한 명 분의 값을 내라고 했다”며 야박하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나 고깃집 주인이 블로거가 식당에 오자마자 광고 요청을 했고 그것을 거부하자 식당 상호가 들어간 글을 인터넷에 올려 매출이 급감했다며 실제로 고기뿐 아니라 맥주까지 마셨다고 반박해 블로거가 역풍을 맞은 경우다. 이 일로 인해 일부 파워블로거가 무전취식하거나 서비스를 요구하는 등의 행위를 개탄하는 ‘우리는 파워블로거를 반대한다(우파반)’ 는 인터넷 카페가 개설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워블로거와 거지를 합성한 신조어 ‘파워블로거지’를 규탄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어떤 블로거는 아예 협찬이나 금품을 받지 않는다며 메인 화면에 게시하기도 한다.

▦돈 벌이 나선 파워블로거 실태

조회수가 많은 파워블로거에게는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리는 대가로 돈이나 물품을 제공하겠다는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네이버 블로그에 공작, 요리, 아이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올리고 있는 양은진(37)씨는 지난해 네이버 파워블로거에 선정된 이후 협찬을 해주겠다며 후기를 올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말한다.

양씨는 “포스팅을 해주면 돈이나 물건을 주겠다는 메일이나 쪽지가 많을 때는 하루 5, 6통씩 온다”며 “생활용품부터 미용실, 성형외과 등 분야를 막론하고 포스팅 하나당 10만원 안팎에서 많게는 30여만원 정도를 지급하거나 공짜시술을 받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물건을 받는다면 당연히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없어 모두 거절하고 있다”는 양씨는 “남에게 더 많이 노출되는 블로그라 어느 정도 사명감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파워블로거 중에서 양씨 같은 클린블로거가 있는가 하면 아예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뛰어든 경우도 많다. 시중에는 파워블로거가 되기 위해 최적화한 포스팅을 올리는 법과 운영방안에 대한 강좌가 활발히 개설되고 있다. 조회수 조작 프로그램도 그리 비싸지 않은 값에 판매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최근에는 파워블로거 그룹을 관리하는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ㆍ네티즌이 이메일이나 블로그 등 전파 가능한 매체를 통해 자발적으로 어떤 기업 또는 제품을 홍보하는 마케팅 기법) 회사까지 우후죽순 생겨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한 홍보회사 대표는 “하루 만 명 이상 방문하는 파워블로거는 한번 포스팅하면서 70만~80만원 가량을 달라고 대놓고 요구한다”며 “최근에는 파워블로거 중 일부가 온라인 에디터라는 명함을 파고 다니면서 기자 행세를 하고 아예 집단을 이뤄 회사를 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입 소문이 중요한 업체는 종종 블로그 마케팅을 하지만 일부 블로거가 왜 자신은 초대하지 않았냐며 항의하고 악의적 소문을 내는 등 후유증이 커 업체에 이점을 알리고 되도록 블로그 마케팅을 자제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클린블로거 양은진씨의 블로그 '살롱 드 양짜'는 아이들과 함께한 공작과 놀이, 요리 등 일상에 관한 소소한 글과 사진이 주를 이룬다. 양은진씨 제공
클린블로거 양은진씨의 블로그 '살롱 드 양짜'는 아이들과 함께한 공작과 놀이, 요리 등 일상에 관한 소소한 글과 사진이 주를 이룬다. 양은진씨 제공
동화책 저자이기도 한 양씨는 블로그 포스팅도 동화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읽는 사람이 좀 더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리고 있다고 했다. 양은진씨 제공
동화책 저자이기도 한 양씨는 블로그 포스팅도 동화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읽는 사람이 좀 더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리고 있다고 했다. 양은진씨 제공
양은진씨 제공.
양은진씨 제공.

▦조작된 정보의 유통 막을 길 없어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유통으로 글을 믿고 상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받은 이들의 피해가 늘면서 블로그 자체가 조작된 정보의 유통 경로가 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2일 블로거들에게 자사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개 및 추천글을 올리도록 하면서 경제적 대가를 지급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네오팜과 한빛소프트 등 20개 사업자를 적발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사업자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온라인 광고를 위해 광고대행사와 계약했고 광고대행사는 영향력 있는 파워블로거를 섭외해 해당업체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소개·추천글을 블로그에 올리도록 하고 건당 3만~15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경제적 대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채 제품 사용후기인 양 해당 상품과 서비스를 추천하는 글이 문제가 됐다. 공정위는 해당 글이 사실상 광고인데도 일반인의 소개·추천인 것처럼 소비자를 속인 것이라며 계속해서 적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2011년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제정해 협찬 등의 경제적 대가를 받아 쓴 글을 명시하도록 했지만 대가성 글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버젓이 포스팅 하는 블로거가 여전히 많다. 전문가들은 아예 블로그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며 특정 시점에서 한꺼번에 비슷한 콘셉트로 여러 블로그에 게시된 글은 거의 광고라고 보면 된다고 충고한다. 특별히 고화질 사진이 여러 장 게시되거나 제품 소개가 장황하고 일반인들이 관심 없는 부분을 여러 번 강조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최근에는 맛집을 소개하면서 음식 맛도 분위기도 좋은데 화장실 비누가 별로라는 식으로 사소한 트집을 잡는 등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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