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혼선에 당정 관계 우려까지
잇따른 정책 혼선과 파행으로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당정 관계 악화 우려라는 대형 암초를 만났다.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의 등장은 그나마 친정의 지원을 받던 최 부총리의 입지를 더욱 좁힐 가능성이 높다. ‘증세 없는 복지’ 기조로 경기 부양에 매진하던 최 부총리의 정책 주도권이 안팎의 공격을 받으면서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기능마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친박 실세’라는 막강한 파워를 앞세워 경제활성화 등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을 브레이크 없이 모두 밀어붙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사내유보 과세, 재정건전성 문제 등에 대해 태클을 걸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최 부총리 뜻대로 풀렸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올해는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강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초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군인, 사학연금의 추진 일정은 여당의 요구로 하루 만에 폐기했고, 연말정산 파동은 최 부총리가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막아보려 했으나 성난 민심과 여당의 반발에 밀려 결국 백기 투항으로 마무리됐다.
잇단 실책과 무리수로 정책의 주도권은 급격히 당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직역연금개혁, 노동 개혁 등 부처간 조율이 필요한 대책들은 성급하게 흘리거나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돼 여러 잡음들이 노출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성토하는 대학가의 ‘최씨 아저씨 대자보’ 등 최 부총리에 대한 바닥 민심도 싸늘하다.
사면초가에 놓인 최 부총리 입장에서 유승민 원내대표라는 존재는 삐걱거리고 있는 당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김 대표와의 설전이 전초전이었다면, 사실상 여당의 정책 결정권을 쥔 유 원내대표까지 가세한 당정간의 정책 대결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김 대표는 3일 국회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고,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유 원내대표는 전날 취임 일성으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고 한 기조는 바꿀 필요가 있다”고 일갈했다. 더구나 최 부총리의 재정확장 노선까지 문제 삼는 상황이라 최 부총리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 부총리와 유 원내대표가 위스콘신대 동문이라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정부가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여당이 잔뜩 벼르고 있는 터라 당정 관계의 전망이 밝지 않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 유 원내대표 취임, 잇따른 정책 실기 등 삼재(三災)에 빠진 형국이라 앞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이 동력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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