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라는 정부 정책 기조를 비판하며 증세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 김 대표는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국민 권리로서 복지라는 혜택을 누리려면 국민 의무인 납세라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복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전면적으로 점검한 뒤 이 결과를 토대로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때 국민의 뜻을 물어 보고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고, 증세로의 정책전환은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이 전제임을 제시했다.
이에 앞서 그제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도 어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수정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유 원내대표는 “국민들은 담뱃값이 오르고 소득세가 오르니 세금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정부는 자꾸 ‘증세는 없다’고 하니 더 화가 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유럽 일부 국가처럼 ‘고부담 고복지’로 가기 어렵다면 ‘중부담 중복지’로 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치권이 복지 수준과 세금ㆍ재정 문제에 합의해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당 지도부의 잇따른 문제 제기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은 사실상 껍데기로만 남았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오랜 ‘부자 증세’ 요구에 덧붙여 여당 지도부가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의 허구성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만큼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정윤회 문건’ 파동과 연말정산 파동을 거치며 지지율 급락을 겪은 정부가 권력누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여당에 기댈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여당과의 정책 조율과 소통이 어느 때보다 긴요해졌다.
사실 여당 지도부의 지적에 앞서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의 논리적 기초는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취임 당시 박 대통령이 예산 절감과 함께 강조한 지하경제 뿌리뽑기가 애초의 구상대로 이뤄지기만 했어도 어느 정도의 재원 충당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해외 도피자금 추적 등 적극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하경제 색출 성과는 한정적인 반면 복지 확대의 결과 예산은 오히려 팽창했다. 이래저래 박 대통령과 정부가 헛된 고집을 꺾고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의 허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보다 현실적 대안 모색에 나서야 할 때다.
앞으로 증세와 복지를 함께 논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숱한 지적처럼 기존의 복지 혜택을 줄이기는 지난하다. 따라서 복지 배분의 미조정과 함께 공정한 증세 방안을 집중 논의해 마땅하다. 서민증세냐, 부자증세냐의 정치공방으로 흘러서는 헛일이다. 조세부담률 인상과 누진성 강화를 병행, 이번만큼은 세수 증대와 조세 정의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의 각오가 선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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