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유층·다국적 기업 증세, 저소득·중산층 지원 강화 초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일 상위 1% 부유층과 다국적 기업에서 세금을 거둬 서민ㆍ중산층 복지 혜택을 강화하는 4조 달러(약 4,400조원) 규모의 ‘2016 회계연도 예산 요구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지난 달 신년연설에서 표방한 ‘중산층 경제’ 실현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오바마의 증세는 기업·개인을 막론하고 상위 1%에 집중 과세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애플, 제너럴일렉트릭,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기업이 해외에 유보해 놓은 2조달러 가량에 14%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다. 이들 다국적 기업의 국외 소득에 매년 19% 세금을 부과하고, 월가 대형은행이나 보험회사 부채에 0.07% 수수료를 매기는 방안도 제시했다.
부유층 개인을 겨냥해 자본소득세 및 배당이익 최고세율을 현재 23.8%에서 28%까지 올리고 고소득자 세부담 경감을 위한 각종 소득공제도 폐지한다. 백악관은 이 방안이 시행되면 향후 10년간 2조 달러 가량의 세수 증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이렇게 확보한 세금을 99%의 근로자와 중소기업에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까지 저소득층 4세 미만 자녀의 ‘프리스쿨(유아학교)’ 비용을 지원하고, 10년간 600억달러를 들여 2년제 대학 등록금을 무료로 해줄 계획이다. 동성애자 부부가 사회보장 체계의 배우자 혜택을 받도록 10년간 140억 달러를 투입하는 내용도 담았다. 중소기업의 세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현재 35%인 법인세율을 28%로 인하한다. 대기업도 역시 인하 혜택을 받지만 감세 한도가 적용되는데다, 이들이 조세 허점을 이용해 해외에 숨긴 돈을 찾아내면 세수가 줄지 않을 것으로 미 정부는 보고 있다.
오바마는 서민ㆍ중산층 지원 예산을 대폭 늘려도 그에 상응하는 재원을 이 같은 증세로 메울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재정적자가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회가 예산 요구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현재 13.5조달러인 국가부채가 10년 뒤 20조3,000억달러로 늘어나지만,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5%에서 73.3%로 감소할 것이라고 백악관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이 겉으로만 서민ㆍ중산층을 위한 것일 뿐 토목ㆍ무기업자를 위한 예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도로 철도 교량 등 인프라 건설에 6년간 4,780억달러를 배정한 것에 경제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역시 “경쟁력 있는 미국의 글로벌 정보기술(IT)업체와 제약기업들이 벌어들인 소득을 민주당 지지기반인 지역 건설업자에 배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예산 요구안에서는 공화당의 협조를 의식해 국방 예산안을 크게 늘린 점도 눈에 띈다. 아프간 철군 등으로 대외전쟁 수행에 투입되는 ‘해외비상작전’ 예산은 줄었지만 조직 운영과 무기조달, 연구ㆍ개발에 쓰는 예산은 380억달러 늘어난 4,960억달러로 잡았다. 여기에는 F35 57대 구입을 위한 106억달러, U2 고공정찰기와 헬리콥터 등 구입이 포함됐다.
예산 편성의 전권을 쥔 미 의회는 이 예산 요구안을 참고해 오는 10월까지 내년도 예산을 만든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지도부는 재정 축소를 선호하기 때문에 실제 증세가 될지는 미지수다. 폴 라이언 하원 세출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경제에서 잘하는 부문을 착취하는 ‘질투의 경제’에 매달리고 있다”며 “정치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국가경제에는 도움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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