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피아노였다. 검은 건반 흰 건반이 모두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피아노는 뭐랄까 아름답고 위엄이 있었다. 오르골이나 양배추 인형도 너무나 갖고 싶었다. 좀 커서는 현미경과 망원경, 지구본도 그랬다. 그것들 역시 너무 비싸서 욕심내기가 어려웠다. 다 자라서 뒤늦게 선물 받게 된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포기되었다.
가끔씩 아이들이 어이없는 것을 요구할 때가 있다. 호루라기 사줘 응? 마법지팡이 사줘 응? 제발!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동네 문방구에 갈 때도 있고, 울며 떼쓰는 아이를 무시할 때도 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비싸고 좋은 선물이 꼭 오래 가지는 않는 것 같다. 몇 번 갖고 놀다가 구석에 처박히고는 한다. 인형이나 블록 같은 것보다 신문지, 빈 상자, 음료수병 같은 것을 재밌게 갖고 놀 때도 많다. 휴지심을 한 개 들고 다음 휴지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놀이도구가 반, 상상력이 반일 것이다. 정말 근사한 장난감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불완전함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아이들에게는 있다. 그것이 동심이고 창의력인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은 언제나 좀 더 리얼한 것을 원하지만 말이다. 손을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내 손 안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와 편의에 빠져 정작 옆 사람을 살피는 데는 소홀해지는 것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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