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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의 선행 조건

입력
2015.02.0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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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는 정치인 사이에서 금기어다. 표심을 잃는 첩경이란 사실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다. 연말정산 파동이 일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말정산 환급과 관련한 과도한 걱정 때문에 증세 논의가 불거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서둘러 진화를 시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진은 지난달 21일 당정 협의에서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최 부총리.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증세는 정치인 사이에서 금기어다. 표심을 잃는 첩경이란 사실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다. 연말정산 파동이 일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말정산 환급과 관련한 과도한 걱정 때문에 증세 논의가 불거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서둘러 진화를 시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진은 지난달 21일 당정 협의에서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최 부총리.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국민은 안다. 복지엔 돈 든다. 별 수 없다. 세금뿐이다. 하지만 싫다. 더 내는 건 더 싫다. 그 맘 정치인은 안다. 나라 결딴나도 증세는 금기다. 무책임하게 우물쭈물 빚만 불릴 텐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공격적인 복지 공약은 야당을 무색하게 했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보편복지 주도권을 잡았던 야당을 밀어내고 폭넓은 층에서 표심을 얻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때부터 ‘증세 없는 복지’가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 이런 예상은 올해 연말정산으로 낸 세금을 다시 환급해 주기로 결론이 난 연말정산 파동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백지화 사건에서 고스란히 현실화했다. 정말 앞뒤가 안 맞는 것은 줄줄이 뒤집어진 이 정책들이 명분도 있고, 국민을 설득할 여지도 충분히 있었다는 점이다. 당정이 반대층을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접은 것은, 증세를 증세로 인정할 수 없어서였다. (…) 증세 없이 복지혜택만 넓히는 것은 불가능한 약속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개선은 세율을 높이지 않았을 뿐,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사실상의 증세다. 그런데도 지난해 담뱃값 인상 논의가 불거졌을 때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증세가 아니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주장을 했고, 최근 연말정산 파동이 일었을 때도 “증세 논의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부정했다.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증세문제를 공론화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세율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면세대상을 줄이는 것, 소득파악률을 넓히는 것 등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 연말정산 개선,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도 분명 추진했어야 할 방편들 중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은 이미 성향을 떠나 복지에 대해 기대하는 수준이 높아졌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의 반발은 더욱 커질 것이다. 여당이 합리적인 정책마저 무리하게 뒤집은 것도 복지를 포기했을 때 유권자로부터 선택받지 못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증세를 증세라 부르도록 허하는 일이다.”

-증세를 증세라 부르도록 하라(한국일보 ‘편집국에서’ㆍ김희원 사회부장) ☞ 전문 보기

“박근혜 대통령은 세율을 인상하는 직접증세 없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공제감면 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간접증세만으로 복지재원을 충당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번 연말정산 논란의 배경이 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소득세법 개정’도 그 일환이다. 모든 조세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세액공제로의 전환 자체는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직접증세는 눈에 보이니까 ‘너도 내고 나도 낸다’고 느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간접증세는 ‘나만 더 내게 되었다’며 불평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즉 직접증세보다 간접증세가 더 강한 조세저항에 봉착할 수 있다. (…)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감정은 논리 이전의 문제다. 간접증세는 그 감정을 건드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대통령만 빼고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아무도 보고하지 않았다. 정부ㆍ여당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야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간접증세는 같은 소득이라도 납세자의 특성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세금폭탄을 맞았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중산서민층이 나오는 걸 피할 도리가 없다. (…) 재벌·부자 증세로, 아니 이명박 정부의 재벌·부자 감세 철회만으로도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런 이분법적 논리로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글쎄다. 모든 혁명은 조세저항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증세를 주장하는 정당은 다음 선거에서 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세금 문제에서 솔직한 정치인을 찾기는 어렵다. (…) 복지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은 기정사실이고 따라서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거 국민은 다 안다. 그러니 유치하게 속일 생각마라. 정부ㆍ여당은 간접증세도 증세고 간접증세와 직접증세를 결합하는 것이 세수 확보와 조세저항 극복에 더 효과적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야당은 보편복지를 위해서는 보편증세도 필요하다는 것 즉 재벌ㆍ부자 증세만이 아니라 중소기업ㆍ서민 증세도 필요하다는 걸 고백해야 한다. (…) 지금 여야는 똑같은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상대방의 증세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 증세를 위해서는 ‘너도 더 내고 나도 더 낸다. 그게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인들부터 솔직해져야 한다.”

-증세 문제, 여야 모두 솔직해져라(1월 28일자 경향신문 ‘김상조의 경제시평’ㆍ한성대 교수 겸 경제개혁연대 소장) ☞ 전문 보기

만만한 게 중산층이다. 우대 대상은 어김 없는 납세자가 아니다. 적은 혜택에 부담만 많다. 오르긴 어려워도 떨어지긴 쉽다. 복지커녕 생계가 불안하다. 이들 설득, 증세 전 급선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20일 새해 국정 연설에서 중산층 경제 재건을 남은 임기 2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재원 마련을 위한 각종 증세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자녀들의 대학 진학에 대비해 연간 1만4000달러까지 학자금 저축 불입액에 주어지던 비과세 혜택을 폐지한다는 계획도 이 중 하나였다. 학자금 저축 비과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인 2001년 도입됐다. 미국 가구의 중위 소득(2013년 5만2000달러)보다 높은 대학 학비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였다. (…) 오히려 저축할 여력이 없는 중산층ㆍ서민보다는 고소득층의 재태크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많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이 부분을 정확히 지목했다. 그는 “학자금 저축으로 감면되는 세금 혜택의 70%가 연간 소득 20만달러 이상 가정에 돌아가고 있다”면서 “이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저소득층 대학생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자금 저축 비과세 폐지는 ‘오바마 증세’의 첫 번째 실패작으로 남게 됐다. (…) 오바마의 패착(敗着)은 중산층 기준을 문자 그대로 너무 순진하게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중산층에 대한 통계적 기준은 연소득 3만5000~10만달러다. 이 기준대로라면 연간 소득 20만달러 이상은 고소득층에 속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엔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선 20만달러를 벌어도 세금과 모기지론(주택 대출), 자동차 할부금 등을 내고 자녀 교육비에 충당하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다”며 “대통령이 팍팍한 중산층 생활을 모르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통계상 중산층 기준과 체감도 차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돼왔다. (…) 높은 집값과 교육비 부담에 등골이 휘는 국민에게 “당신들은 중산층”이라고 정부가 아무리 떠들어댄들 소귀에 경 읽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증세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늘어나는 세금은 결국 중산층과 고소득층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세금 낼 형편조차 되지 않는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증세 재원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산층이면 세금 조금 더 내도 먹고살 만하다”는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증세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증세보다 중산층의 자신감 회복이 먼저다.”

-중산층이 ‘增稅 대상’일 뿐인가(조선일보 ‘특파원 리포트’ㆍ나지홍 뉴욕특파원) ☞ 전문 보기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제가 수렁에 빠져 있을 때다. 그해 버락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다. (…) 그해 미국은 중산층 몰락이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자동차 산업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디트로이트시에선 해고 노동자들의 와이프가 생계를 위해 매춘에 나선다는 보도가 나왔다. 주택 모기지를 갚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거나 텐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6년이 지난 올해,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 연설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 그는 “고소득층 증세를 추진하되 중산층 살리기에 나서겠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연두교서 연설로 중산층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세제 혜택 조항 하나를 없앴기 때문이었다. 이 조항은 미국의 부모들이 자녀 대학 학자금 준비를 위해 금융상품에 투자할 경우 연간 1만4000달러까지 소득공제해주고 투자 수익에 대해 비과세하는 제도다. 이 혜택을 받는 가구의 70%는 연 소득 15만 달러 미만인 중산층이다. 오바마는 여론이 나빠지자 이 조항 폐지 방침을 일주일 만에 철회했다. (…) 중산층은 세금ㆍ의료보험 등에선 많은 부담을 지지만 정부 지원은 적게 받는다. 이런 중산층에 그나마 있던 세금 혜택을 없애려고 했으니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연말정산 파동이다. 꼬박꼬박 근로소득세를 내는 중산층 봉급생활자가 가장 열을 받았다. (…) 3저 호황으로 일자리를 쉽게 잡았던 ‘486세대’가 머지않아 은퇴 시장에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이들은 세금ㆍ연금ㆍ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면서 내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교육시켰다. 하지만 대부분 노후 대책이 미흡하다. 이 세대가 노인이 됐을 때 과연 다음 세대가 이들의 복지 수요를 감당할 만큼 경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복지체계가 무너지면 현재 중산층의 상당수는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연말정산 파동에 이어 이번엔 건강보험 개편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대책을 논의하겠지만 중요한 원칙은 국민에게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상복지’와 ‘증세 없는 복지’는 애초부터 실현되기 어려운 개념이다. 누군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복지 지출구조를 효과적으로 개편하고 유지 가능한 부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를 묵묵히 지탱해온 중산층은 추락하지 않기 위해 저항의 날갯짓을 시작할 것이다.”

-추락하는 중산층, 날개는 있나(중앙일보 ‘서소문 포럼’ㆍ정철근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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