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용가치 낮다' 판단한 듯… 구속 기소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마모(53)씨는 북한을 동경했다. ‘김일성 항일투쟁사’에 빠진 탓이다. ‘남한은 미국에 예속된 천민자본주의 사회, 북한은 선군정치 사회’라는 역사인식이 생겼고, 대학 졸업 후 유력 언론사에도 다녀 봤지만 이런 생각은 점점 굳어졌다.
사회생활 적응에 실패한 마씨는 2008년 9월 중국과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했다. 그리고는 북한의 대남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김일성 회고록과 북한체제 찬양ㆍ선전 글을 탐독했고, ‘북한 군부를 주축으로 조국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북한행을 결심한 그는 2010년 7월 14일 ‘김일성 장군을 높이 받들고 따르고자 한 사람입니다. 북한으로 망명을 신청하려고 합니다’는 이메일을 북한 쪽에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유엔 북한대표부로 보낸다는 게 이메일 주소를 착각하는 바람에 유엔 한국대표부로 잘못 보냈기 때문이다.
기다림에 지친 그는 2개월 후 뉴욕 소재 유엔 북한대표부를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대표부는 영사 업무를 안 한다. 입국비자를 받으려면 중국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을 찾아가라”는 답변만 들었다. 불법체류자로 단속된 그는 이듬해 9월 미국에서 추방됐고 밀입북 시도 혐의로 대구구치소에서 1년간 징역을 살았다.
출소 후에도 ‘북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탈북자로 쓰고서 개ㆍ돼지로 읽는다’ 등의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스스로에게 보냈을 정도였다.
결국 마씨는 지난해 11월 13일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 다롄(大連)으로 향했고, 옌지(延吉)를 거쳐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허룽(和龍)시에 도착했다. 2주 후인 11월 28일 오전 8시 마씨는 간평촌 앞의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걸어서 꿈에 그리던 북한 땅을 밟았다.
하지만 마씨의 북한 생활은 한 달도 안 돼 끝났다. 북한 적십자회는 지난해 12월 26일 “인도주의 견지에서 돌려보낸다”며 그를 강제송환했다. 마씨는 판문점에서 국가정보원에 신병이 인계됐고,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현철)는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잠입ㆍ탈출, 회합ㆍ통신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검찰은 북한이 마씨에 대해 ‘활용가치가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조사결과 북한은 마씨를 상대로 ‘군대에 있을 때 얼마나 사격을 자주 했냐’ ‘국정원 대구지부의 위치는 어디냐’ 등을 조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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