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태어나서 누리는 행복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요리사의 입장에서는 품질 좋은 굴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행복하다.
우리가 겨울철 흔히 접할 수 있는 굴은 세계적으로 고급 식재료에 속하는 해산물이다.
해외 내로라하는 미식국가들에서는 우리가 흔히 석화라고 부르는, 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굴은 개당으로 계산해서 판매하는데 보통 식료품점에서는 굴이 개당 2, 3달러(약 2,200~3,300원)대에 판매되고 레스토랑에서는 4~6개에 15~20달러(약 1만6,000~2만2,000원)는 지불해야 먹을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굴 시세를 살짝 알아보면 껍질을 까지 않은 ‘갓굴’이 보통 1만원 정도에 알이 크고 좋은 것으로 70~80개나 구입할 수 있고 껍질을 반만 제거한 ‘석화’는 40여 개씩 살 수 있다. 또 서양에서는 너무 비싸서 유통도 잘 되지 않는 깐굴은 요즘과 같은 겨울 제철이면 2~3kg에 2만~3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으니, 굴 요리를 즐기기엔 우리나라가 최고의 나라다.
겨울의 으뜸 제철 해산물인 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확연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각각 다양한 맛을 뽐낸다.
우리나라 굴은 크게 통영 굴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남해안의 굴과 서해안 갯벌에 묻혀 자란 서해안의 굴로 나뉜다.
남해안의 굴은 통영, 여수, 남해군에서 집중적으로 양식하는데 보통 4월 즈음에 긴 밧줄에 굴의 포자를 심고 조류의 흐름이 좋은 위치에서 양식을 하게 된다. 이 양식법을 수하식이라고 한다. 사실 수하식 양식법은 처음 포자를 기르는 동안 일체의 먹이나 다른 물질을 더하지 않아 양식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승인할 만큼 맑은 바다인 통영 앞바다에서 플랑크톤을 먹고 스스로 자라는 남해안 굴은 봄에 포자를 뿌려 그 해 초겨울에 수확을 할 정도로 빠르게 자란다. 영양분을 듬뿍 담아 알이 굵고, 색이 선명하다. 또한 깨끗한 바다에서 자라니 생식에도 유리하다. 그만큼 생산량이 많아 통영, 남해의 굴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서해안의 굴 양식법은 투석식이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양식이 아닌 준(準)자연식이다. 1970~1980년대부터 서해 바다에서는 굴의 포자를 소나무 등 나무기둥이나 돌에 심어서 갯벌에 두어 양식을 시작했는데 이 굴의 포자가 자연적으로 갯벌에 널리 퍼져 지금은 따로 포자를 심지 않아도 매년 굴이 자생하고 있다. 사람들은 갯벌에 나가 자연스럽게 자란 굴을 채집해오면 된다. 서해안 굴의 특징은 남해안 굴과 달리 밀물 썰물의 차이로 인하여 다소 시간이 걸려 자라기 때문에 3년생은 되어야 남해안 굴의 크기로 성장한다. 시간이 좀 걸려도, 갯벌에 묻혀서 자라기 때문에 알 색깔이 노르스름하며 맛 또한 매우 진하고 갯벌의 내음을 풍겨 또 다른 매력을 보인다. 또한 서해안 굴은 생으로 먹기보다 익혀 먹는 요리가 좋은데 어리굴젓같이 향과 맛이 진한 저장식품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굴 요리를 직접 해보고 싶다면 각 산지에 따라 다른 요리를 하는 걸 추천한다. 겨울철 집에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굴전은 서해안 굴이 알맞다. 굴에 참기름,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밀가루를 살짝 묻혀서 노란 계란물에 노릇하게 지져내면 겨울철에 호호 불어먹는 반찬으로도 으뜸이고 막걸리 같은 편안한 술 한잔에 곁들이기도 좋은 일품안주로도 좋다. 매생이와 함께 넣어 굴국을 끓이거나 달디단 겨울 무를 굵게 채썰어서 밥을 짓는 중 굴을 밥 위에 듬뿍 얹고 뜸들여 완성하는 굴솥밥 역시 뜨끈뜨끈한 열기를 감싸고 향을 풍기는 서해안 굴이 최고다.
싱싱하고 바다 내음이 물씬한 생굴을 먹거나 미나리, 배, 배추 등을 넣고 갖은 양념에 버무린 굴 무침으로는 남해안 굴을 추천한다.
올 겨울이 가기 전, 우리나라의 굴을 산지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요리해 다양한 굴의 매력을 느껴보도록 하자.
권우중 CJ푸드빌 한식총괄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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