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수도권 규제 완화를 둘러싼 찬반 양론이 다시 불붙고 있다.
그 동안 역대 정부와 수도권 자치단체 및 경제계는 ‘경제를 살린다’, ‘경제성장률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추진하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비수도권의 자치단체와 경제계, 그리고 지방분권운동 단체에서는 수도권 규제 완화가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켜 지방을 죽인다고 강력히 반대해왔다. 수도권 규제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 사회의 주요 갈등중의 하나로 되어왔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선 지방 육성 후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원칙에 따라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방 육성의 일환으로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을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방 육성 우선 원칙이 사라지고 수도권 규제 완화가 추진됐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경제 살린다는 명분으로 얼마 남지 남은 수도권 규제마저 덩어리 규제로 보고 단두대에 올려 일거에 철폐할 뜻을 비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종합적인 국토정책차원에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올해 안에 수도권 규제가 완전히 철폐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연 이 시점에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한국은행에서 작성하는 지역산업연관표를 분석한 연구들은 수도권 기업의 생산활동이 비수도권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비수도권 기업의 생산활동이 수도권에 미치는 파급효과보다 훨씬 적음을 보여준다. 이는 수도권에 투자하는 것보다 비수도권에 투자하는 것이 국민경제의 활성화와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분석결과로 미루어 볼 때 수도권 규제를 풀어서 투자를 활성화시키면 수도권에서 일정한 추가적 성장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비수도권에 미치는 투자 파급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반면 수도권 규제 완화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라 혁신도시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지역 성장기반을 와해시킬 것이다. 수도권 규제 폐지가 기업의 지역 이탈과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 전체 산업 사업체의 51%, 일자리의 51%가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 비중이 높은 전문, 과학, 기술 서비스업의 경우 각각 60%, 72%가, 출판, 영상, 방송, 통신, 정보 서비스업의 경우 각각 71%와 79%가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최근까지 이들 산업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돼 왔다. 21세기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들의 이 같은 높은 수도권 집중도는 지역경제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지역별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해 지역에서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 판교에 대규모 창조경제밸리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 규제가 철폐되고 수도권에 창조경제밸리가 건설되면 지역수준에서 창조경제가 실현될 수가 없을 것이다. 창조산업들이 더욱 수도권에 집중될 것이 불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로 수도권에 대한 투자에 늘어나서 경제가 단기적으로 다소 활성화될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지역경제의 성장 기반이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수도권 규제 철폐 신호는 지역경제에 ‘빨간 불’ 신호로 비쳐서 지역의 장래에 대한 비관주의를 더욱 확산시킬 것이다. ‘지역이 희망이다’는 믿음이 사라지면 유망한 기업과 사람이 지역을 떠나가고 지역은 황폐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 규제 완화는 단기적으로는 수도권 경제의 성장에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비수도권 경제를 죽여서 국민경제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것이다. 수도권 규제는 고육지책으로서 언젠가는 폐지돼야 마땅하지만, 수도권 집중이 매우 높은데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비수도권에서 성장잠재력이 상당 정도 형성될 때가지 수도권 규제는 유지돼야 한다.
혁신도시와 테크노파크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역경제의 튼실한 성장기반을 구축할 때가지 좀 느긋이 기다려야 주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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