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잃어버린다는 뜻의 망양(亡羊)이라는 말이 있다. ‘장자(莊子)’에는 두 사람이 양을 치고 있는데 한 사람은 책을 읽느라, 다른 사람은 노름을 하다가 양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유야 다르지만 양을 잃어버린 것은 마찬가지라는 말인데, 외물에 정신이 팔려 본성을 잃어버린 것을 비유한다. 도망한 양을 좇아가다가 갈림길이 많은 데 이르러 마침내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학문의 방향을 잃어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또 양을 잃고 우리를 수리한다는 망양보뢰(亡羊補牢)의 고사가 ‘전국책(戰國策)’에 보인다. 양띠 해를 맞아 정신을 바짝 차려야 양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8세기 무렵의 학자 이광정(李光庭)은 ‘망양록(亡羊錄)’이라는 책을 지어 정신을 놓고 사는 세상 사람들을 풍자하였는데, 그 중 한 노파에 대한 이야기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어떤 관리가 움막에 사는 구부정한 노파를 보고 무슨 낙이 있을까 비웃었다. 이에 노파는 “하늘이 나에게 복을 내려 여자로 태어나게 했고, 나를 즐겁게 하려고 미천하게 살게 했으며, 나를 편안하게 하려고 열심히 일을 하게 했고, 나를 행복하게 하려고 질병을 주었으며, 나를 영화롭게 하려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게 했지요”라고 답했다.
의아한 관리가 다시 묻자 노파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나갔다. 남자들은 제 입 하나 풀칠하기 어려운데도 국가에 세금을 물어야 하고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니 자신이 여자로 태어난 것이 복이라 했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고관대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미천함이 오히려 다행이라 했다. 놀고먹다가 천벌을 받는 것보다 열심히 노동해서 가난하지만 굶어죽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젊은 여인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여 욕을 보지만 자신은 병자라서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는다 했다. 굶주림과 추위도 싫긴 하지만 좀 더 나은 옷과 밥을 찾다보면 욕심이 끝이 없을 것이니 차라리 참고 견디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했다.
이에 관리는 노파가 즐겁기만 하고 다른 근심은 없는지 물었다. 이에 노파는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 것이 근심이라 했다. 혼자 살기 어려워 가정을 꾸렸더니 남편의 군역과 세금 때문에, 그것도 도망간 친척의 몫까지 부담하느라 눈코 뜰 새 없어 곱던 얼굴이 말라비틀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늙은이가 젊을 때는 꼭 좋은 옷을 입고 꼭 정갈한 음식을 가려 먹었으며 용모는 반드시 치장을 하고 걸음걸이는 반드시 조신하였으니, 병이 들어도 남들이 알지 못했답니다. 남편이 있고 나서는 헤지고 때 묻은 옷이나, 죽과 같이 거친 음식도 싫어할 줄 모르게 되고, 용모를 가꾸거나 걸음걸이를 조신하게 할 겨를이 없으니, 병이 들어도 내 자신이 알지를 못했지요. 아들이 생긴 이래 고쟁이가 무릎을 가릴 수도 없고 윗옷도 팔뚝이 드러났지요. 곡식 낱알이나 술지게미를 두고 닭이나 개와 다투느라 빗질도 해본 적이 없고 땟국이 몸에서 빠지지 못했지요. 스스로 가련하여 거울을 보았더니, 머리는 봉두난발이 치켜서 구름처럼 풍성하고 번지르르한 예전 모습이 아니었고, 눈은 멍하게 움푹 들어가 별처럼 반짝이는 예전 모습이 아니게 되었답니다.” 불과 10년 세월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자신을 보고 있으니 앞서 든 다섯 가지 즐거움을 즐길 수 없게 되었노라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말을 들은 관리는 노파를 칭송하여 군자라 하였지만, 이광정이 이 이야기를 적은 속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 여자로 태어나 미천한 신분으로 가난에 찌들고 노동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이 오히려 노파의 행복이라 한 말은 뼈를 찌르는 풍자다. 밝은 임금이 세상을 다스릴 때는 백성들로 하여금 걸리적거림 없이 유유자적하게 한다는 말을 붙였으니, 지금 그런 세상이 아님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300년 전 이광정의 글에 적힌 노파의 말이 오늘날 너무 자주 들려온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을 꾸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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