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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양심이 남기고 간 외침 “과거를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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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양심이 남기고 간 외침 “과거를 직시하라”

입력
2015.02.0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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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독일 첫 대통령 임무 수행

대표적 친한파·DJ 햇볕정책 지지… 메르켈 "그의 죽음, 獨의 큰 손실"

“그의 1985년 연설은 독일 전 세대에 영향을 줬고 유럽 중심부의 통합된 힘으로서의 독일의 이미지를 형성했다.”(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지난달 31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사진) 전 독일 대통령은 독일의 양심을 상징해 왔다. 나치 과거에 대한 반성을 강조했고 동서화합을 위해 진력했다. 그는 서독 시절을 포함한 10년의 재임기간(1984~94) 동안 상징적인 존재였던 대통령직의 권위를 향상시켰다는 평도 받는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정신적 지주역을 한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고인은 1920년 슈투트가르트의 명문가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는 독일제국 시대 주 총리를 지냈고 아버지는 외무부 차관까지 역임한 직업 외교관이었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고 독일 괴팅겐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54년 중도우파 정당인 기독민주연합에 가입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외무부 장관과 서베를린 시장을 거쳐 서독 대통령이 됐고 독일 통일 뒤 첫 통독 대통령 임무를 수행했다.

바이체커는 85년 5월 8일 나치 패전 40주년 행사장에서 행한 연설로 독일 안팎에 커다란 감동을 안겼다. 그는 “우리 모두는 죄가 있거나 없거나, 젊거나 늙었거나 반드시 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우리 모두는 과거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고 이를 책임져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또 “과거에 눈을 감는 이는 현재에도 눈이 멀어 있다”는 말로 독일인이 나치가 저지른 죄악을 계속 응시할 것을 요구했다. “나치의 학정에서 자유로워졌기에 나치 패전일은 ‘해방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해방일’은 필연적이고 명확한 언급으로 우리 독일인 스스로의 이미지를 이해하게 해 줬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는 “바이체커의 죽음은 독일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과거사 반성에 대한 바이체커의 거침없는 행보는 85년 10월 서독 대통령의 첫 이스라엘 방문으로 이어졌다. 카임 헤어조크 이스라엘 대통령은 87년 이스라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서독을 찾으며 바이체커의 용기에 화답했다. 바이체커는 강대한 통일 독일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90년 폴란드를 방문해 2차대전 뒤 확정된 국경을 침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체커는 나치 시절 외무부 차관으로 일했던 부친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정에 섰던 아이러니한 과거를 갖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변호인 중 한명으로 재판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87년 “아버지는 전쟁 발발을 막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며 변호에 참여한 일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독일 통일 뒤에는 동서독의 화합과 이민자 포용을 강조했다. 동서독이 분단을 넘어서기까지 인내가 필요하고 부유한 서독인이 나눔을 배우며 통합하기를 조언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독일의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로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구명 활동을 했고 그의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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