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동갑 형 이민기와 동갑으로 출연
정신병원 탈출 시도 과정 그린 작품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인다. 집안 내력이라는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사춘기를 거치지 않고 어린이서 바로 어른이 된 소년이랄까.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어른 같다. 10대의 가출에 대해 “집이 가장 편한데 왜 가출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며 “친구가 가출하면 우리 집에서 재운 뒤 타일러서 돌려 보낸다”고 말할 정도다.
올해로 배우 활동 10년째를 맞은 여진구(18)가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내 심장을 쏴라’에서 띠 동갑 형 이민기와 동갑내기로 출연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 개봉 직전 만난 여진구는 “(이민기를) 형이라 부르긴 했지만 나이 차이를 크게 느끼지도 않았고 연기할 때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스물다섯 동갑내기 청춘 수명(여진구)과 승민(이민기)이 자유를 찾아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을 그린다. 어린 시절의 심적 외상으로 인해 정신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소심한 성격의 수명은 10년 경력의 그에게도 연기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종종 캐릭터에 짓눌린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처음엔 헷갈리는 부분도 많았고 원작소설에 표현된 수명을 잘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면서 “중반쯤 지나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내 생각대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명의 과거가 잘 표현이 안 된 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연기하며 얻은 게 많은 작품이라 고마운 느낌이 크다”라고도 했다.
여진구가 “수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작품 속 캐릭터가 실제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배우로 10년이면 직장인으로 과장쯤 되는 경력인 데다 재능도 출중한 인재이니 그가 수명과 거리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무언가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연기를 하면서 맡은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여본 적은 있죠. 그럴 때마다 자신감 있게 도전하려고 했어요. 배우가 직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죠.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으니 진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진구는 여덟 살의 나이에 영화 ‘새드무비’로 데뷔한 이래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서른 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했다. 아들을 스타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시작한 것도 아니고 단지 영화나 TV에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한 연기가 여기까지 왔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출연할 때 처음으로 제 인기를 실감하셨대요. 그냥 해보고 싶다고 해서 지원해준 건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세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그는 연기 외에 대학 입시도 신경 써야 한다. 시트콤 ‘감자별 2013QR3’과 영화 ‘내 심장을 쏴라’ ‘서부전선’을 찍느라 학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단다. “예전엔 당연히 대학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닥치니까 현실감이 느껴지더군요. 전엔 연극영화과에 굳이 갈 필요가 있겠나 싶어 심리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젠 그냥 대학에 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10대의 마지막이고 친구들도 바빠질 텐데 친구들과 좋은 추억거리 하나쯤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하고요.”
어른이 되기도 전에 배우라는 직업을 먼저 갖게 된 그는 아직 첫사랑이라고 할 만한 연애도 못해봤다고 했다. “누군가를 만나며 괜찮구나 싶었던 적은 있는데 막 보고 싶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성인이 되면 운전면허부터 따려고요. 가까운 데로 드라이브도 가고 세계여행도 해보고 싶어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