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100명 중 3번째까지 저신장증, 소화기·호흡기 질환 등이 성장 막아
치료는 이르면 이를수록 효과 커… 충분한 수면·규칙적 운동 병행해야
쑥쑥 자라는 자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부모에겐 커다란 삶의 보람이다.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작은 키의 아이를 가진 이들이다. 어느 순간 또래 아이들 속에서 유난히 작아 보이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키는 성장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 자녀가 작은 키의 대물림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키 성장 치료에 밝은 의사와 한의사에게 물었다.
의학적으로 저신장증은 정상변이 저신장증과 병적 저신장증으로 나뉜다. 정상변이 저신장증은 모든 것이 정상이면서 키만 작은 경우이므로 일반적으로는 치료가 필요치 않다. 병적 저신장증은 치료가 필요하다. 골격계 이상, 염색체, 선천성 대사이상, 키가 작은 특징을 보이는 다양한 증후군, 전신질환, 영양 결핍, 저신장을 초래하는 내분비 질환(성장호르몬 결핍증, 갑상선 기능저하증, 부신 피질호르몬 분비 증가, 성호르몬 분비 증가 등) 등이 이런 경우다.
자녀의 저신장증 여부를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또래 아이들과 키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또래 친구 100명 중 자녀의 키가 3번째 미만(300분위 미만)이라면 치료가 필요한 저신장증에 해당한다. 보통 아이들은 사춘기 이전까지 연평균 5.5cm씩 자란다. 그런데 4cm 미만으로 자라는 경우, 뼈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2살 어리거나 성장호르몬 수치가 평균보다 낮은 경우도 성장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기형 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병적 저신장증에 대해 “X염색체 이상에 따른 여아의 터너증후군과 만성신질환에 의한 저신장증, 15번 염색체(15q11-13)의 이상에 따른 프레더-윌리 증후군 등 몇 가지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며 “재태연령(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지낸 주 수)이 40주를 못 채우고 태어난 ‘부당경량아’가 지난해 보험적용 대상에 새롭게 추가됐다”고 했다.
박승만 하이키한의원 대표원장은 식욕부진, 소화불량과 같은 소화기질환, 아토피, 천식, 알레르기 비염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아이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 했다. 하이키한의원이 성장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방문한 8~14세 어린이 690명을 조사한 결과, 키 성장을 방해하는 증상은 소화기 허약증이 30.4%로 가장 많았고, 이어 호흡기허약증(16.8%), 정신건강허약증(12.8%), 소아비만(11.3%)의 순이었다.
소화기질환은 단백질, 칼슘 등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해야 할 성장기에 음식물의 소화, 흡수를 방해해 키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토피의 가려움증, 천식으로 인한 기침, 알레르기 비염으로 인한 콧물, 재채기 코 막힘 증상도 숙면을 방해하고 식욕을 떨어뜨려 키 성장을 막는다고 박 원장은 밝혔다.
자녀의 키가 작아 병원이나 한의원의 성장클리닉을 찾은 대다수는 다양한 저신장증 중에서도 원인이 유전인 경우다. 키가 작은 원인이 유전에 있을 경우 이를 ‘특발성 저신장증’이라 한다. 이 교수는 치료법에 대해 “성장호르몬으로 치료한다”며 “운동이나 영양은 보조적인 방법”이라 했다. 이 교수는 “‘키는 유전의 영향이 30%이고 후천적인 것이 70%’라고 알고 있는 부모가 많은데, 사실은 그 반대”라고 했다.
저신장증에 대한 한방의 치료는 성장을 방해하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몸의 면역력을 끌어 올림으로써 키 성장을 돕는 방식. 박 원장은 “소화를 담당하는 내부 장기들이 허약할 경우 음식 먹기가 힘들고 흡수도 잘 안 돼 영양이 부족해지고 성장호르몬 분비도 덩달아 떨어진다”고 했다. 박 원장은 치료법에 대해서는“성장방해 질환의 치료와 함께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신물질을 처방한다”고 했다. 신물질은 가시오가피 두충 천마 우슬 등 17종의 천연한약재에서 추출한 것이라는 설명. 2006~2014년 이 신물질로 1년 이상 치료한 만 8~14세 690명(남 156명ㆍ여 534명)의 치료 효과를 분석한 결과, 성장호르몬(IGF-1) 분비가 연평균 약 30% 증가했다고 박 원장은 설명했다.
성장치료의 시점에 대해 이 교수와 박 원장은 빠를수록 좋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초등학교 가기 전이나 늦어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며 “사춘기가 빠른 여아는 이보다 1~2년 빨라야 한다”고 했다. 여아의 경우 빠른 사춘기로 치료기간이 그만큼 더 짧아질 수 있다.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6개월에서 1년가량 성장 속도에 대한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이 교수는 “치료라는 게 아이가 한창 클 때 좀 더 크도록 해줘야 한다”며 “성장이 상당히 진행해 성장판이 닫힐 무렵에 오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박 원장은 조기 치료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아이가 소화기, 아토피 등 질환을 가진 경우 성장호르몬이 몸의 회복에 쓰이느라 키가 자랄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고 했다. 박 원장은 조기 검진을 통해 성장 방해질환을 예방하는 한편, 자녀의 성장 속도를 꼼꼼히 살펴 시기에 맞는 관리를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키가 잘 자라도록 하는 데는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운동 등 생활습관의 개선도 따라야 한다. 이 교수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학업 부담 때문에 잠을 적게 자고 운동도 잘 안 한다”며 “수면을 충분히 취하면서 규칙적인 운동으로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숙면과 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잘 먹는 것”이라며 “음식을 골고루 먹되, 뼈를 크게 하는 영양소인 단백질이 많은 살코기와 생선이나 두부 등이 좋다”고 했다.
박 원장도 칼슘이 풍부한 음식 섭취와 하루 8시간 이상 숙면 등 생활습관을 꾸준히 실천하라고 했다. 박 원장은 “성장호르몬 분비량은 영양 상태와 운동, 수면 등 후천적인 노력에 따라 변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양 섭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박 원장은 “다양한 영양소 중에서도 특히 단백질이 풍부한 살코기와 칼슘이 많은 유제품은 매일 먹는 것이 좋다”며 “다만 성호르몬을 자극할 수 있는 음식은 피하라”고 했다.
송강섭기자 eric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