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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우울증'… 끝나지 않은 고난의 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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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우울증'… 끝나지 않은 고난의 행군

입력
2015.02.0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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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과정 트라우마에 문화충격 등

사춘기 시기 극심한 스트레스 방치

부모들 불안 증세 그대로 전이도

"성인에 집중된 지원 정책 개선 정신건강 치료 프로그램 마련돼야"

탈북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 탈북 과정에서 가족해체 등 충격을 받은 이들이 남한정착 후에도 정체성 혼란, 문화적 충격,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탈북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 탈북 과정에서 가족해체 등 충격을 받은 이들이 남한정착 후에도 정체성 혼란, 문화적 충격,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린 나이에 사선(死線)을 넘어 온 북한이탈청소년들이 각종 정신적, 심리적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국경을 넘으며, 제3국을 거치는 동안 얻은 트라우마에다 국내 정착 과정에서 겪는 문화충격, 정체성 혼란으로 우울증, 스트레스 등 증상에 노출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사는 10대 북한이탈청소년은 모두 3,284명이다. 이보다 어린 0~9세 아동도 1,177명이다. 북한이탈청소년은 크게 세 부류다. 부모와 함께 탈북해 중국, 제3국을 거쳐 온 전통적인 유형, 탈북 여성이 중국 체류 중 조선족 또는 중국인과 결혼을 통해 얻은 아이가 엄마와 함께 이주해 온 경우, 90년대 중ㆍ후반 ‘고난의 행군’시절 부모를 잃고 떠돌다 혈혈단신 국경을 넘은 뒤 중국에서 브로커 또는 선교사의 도움으로 태국 등 제3국을 거쳐 입국한 경우 등이다. 북한이탈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과 중국 등 제3국에서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을 경험한 이들 청소년들이 한국에 정착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 사망, 부모 먼저 탈북 등으로 가족해체 경험

북한이탈청소년들이 겪는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은 가족해체다. 부모가 먼저 탈북해 남한에 자리 잡은 뒤 브로커를 통해 뒤늦게 아이를 데려오는 이른바 ‘기획 탈북’이 증가하면서 심화하고 있는 현상이다. 전진용 국립서울병원 정신재활치료과 전문의는 “탈북 후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넘게 부모와 헤어져 살아 정신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 전문의는 “하나원에서 근무하면서 만난 아이들은 ‘어머니가 저를 좋아할까요?’ ‘어머니 얼굴이 기억이 잘 안 나요’ ‘전화통화만 했는데 같이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등 걱정이 많았다”며 “북한에서 자신을 양육한 할머니, 고모, 이모 등을 그리워하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했다.

부모가 아닌, 편부, 편모와 함께 남한에 정착한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정신적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전 전문의는 “북에 남아 있는 부모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많다”며 “한국에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한 경우라면 정신적 혼란과 고통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새터민 청소년 생활공동체에서 만난 이모 군이 이런 경우. 이 군은 “아버지는 북한에 계시고 어머니는 중국으로 넘어가 새로운 가정을 꾸려, 형과 함께 남한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처럼 북한이탈청소년은 인격형성이 이뤄지는 청소년 시기에 가족해체라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격과 인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가족해체를 경험하게 되면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가족해체와 함께 남한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다 우울증세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김미라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기획운영팀장은 “3개월간 국정원에서 조사 받은 후 남한사회 적응을 위해 하나원에 입소하면 ‘이제 남한에서 살 수 있게 됐다’며 안도 하지만 퇴소가 눈앞에 다가오면 ‘남한아이들이 왕따를 시키지 않을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등의 걱정으로 우울증상이 생긴다”고 했다.

우울증상에도 불구 상담ㆍ정신치료 거부감↑

북한이탈청소년들은 정신적 증상인 ‘가면성 우울증(Masked Depression)’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면성 우울증이란 우울증이 있음에도 우울한 기분이라는 것을 감추고 이를 다른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발생하는 질환. 등교거부, 무단결석, 과잉행동 등이 이에 따라 나타나는 대표적인 비행 및 문제행동들이다. 이른바 ‘신체화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심리적 반응이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북한이탈청소년들 중에는 두통, 소화 장애, 복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문의는 “내과적 투약을 한 후에도 호전이 없다면 신체화 증상을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전 전문의는 “음주, 흡연, 인터넷 중독 등 ‘우울증적 품행장애’가 있는 청소년들도 있다”며 “북한이탈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북한이탈청소년이 많지만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 전문의는 “북한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없는데다, 정신과 치료를 한다고 하면 북한의 49호병원(정신병원)을 연상해 치료를 거부 한다”고 했다. 상담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문제다. 북한이탈청소년들은 국내에 들어 온 직후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는다. 3개월 간 머무는 국정원에서 1주일 정도 집중조사를 받는데 이 조사가 ‘상담’이란 명목 하에 진행된다. 익명의 한 북한이탈청소년은 “1주일간 조사 받으면서 독방에서 지낼 때 힘들고 괴로웠다”며 “상담이란 말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학업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탈청소년들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공교육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북한이탈청소년들은 북한에서 학교를 중퇴하거나 다니지 않아 학력수준이 남한의 또래아이들보다 처진다. 물망초대안학교에서 북한이탈청소년을 가르치고 있는 이종춘 동국대 명예교수는 “고등학교에 다녀 할 친구들을 초등학교 때 배우는 분수부터 가르쳐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영어는 아예 배우지 않아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북한이탈청소년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주유소 사장이 ‘락커룸에 가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카운터로 오라”고 했더니 무슨 말인지 몰라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정도”라고 했다. 같은 학교의 김미라 팀장은 “탈북 기간이 수개월 또는 몇 년 이상 걸려 학력 결손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중국 등 제3국에 체류하다 탈북 한 경우일 경우 학력결손이 더 길어져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춘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신장, 체중저하도 고민거리다. 북한의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인해 북한이탈청소년들은 대부분 또래 남한청소년에 비해 키가 작다. 이로 인해 또래와 어울릴 때 위축감이 생길 수 있고, 작은 키는 북한이탈청소년에 대한 편견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전 전문의는 “키가 크려고 식품을 과다 섭취할 수 있고, 어려운 경제여건 때문에 정크푸드 같은 고열량, 저영양 음식을 섭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적응 더디고 부모와도 잦은 마찰

탈북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고통은 북한이탈청소년 부모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체 북한이탈자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북한이탈여성들 중 우울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부모의 불안과 우울증상이 북한이탈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전 전문의는 “부모 특히 엄마가 우울증상이 심해지면 자녀교육에 무관심하거나 아이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고 했다. 김 팀장은 “남한에 올 수 있게 도운 브로커에게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을 송금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북한이탈자 부모가 자식교육을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자신들보다 남한문화를 빠르게 습득하지 못한 부모들과의 마찰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이탈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아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11년 영국 런던에서 한 20대 흑인청년이 택시를 타고 가다 총기와 마약밀매 용의자로 의심받아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젊은이들이 도심에 불을 지르고 상가를 약탈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흑인청년 사망에 뒤이은 대규모 폭동의 원인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가능한데, 당시 불 지르고 약탈하는 젊은이들조차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이탈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북한이탈청소년의 정신건강문제도 원인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이들 내면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며 성인에 집중된 북한이탈주민 정책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 교수는 “북한이탈청소년들이 우리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이방인으로 남게 되면 향후 우리사회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특례입학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북한이탈청소년 중 80%가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조철현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말로는 관용과 이해를 말하고 있지만 북한이탈자들을 사회구성원이 아닌 이방인으로 여기고 있다”며 “ 그들을 우리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등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김 팀장은 “북한이탈청소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북한체제와 북한사람을 분리하지 않고 동일시 하는 것”이라며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북한체제를 동의한 사람처럼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 전문의는 “북한이탈청소년들은 평생 남한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 국민”이라며 “성인에 집중돼 있는 북한이탈자 관련 연구와 지원프로그램을 청소년에게 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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