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돌풍을 이끌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61·독일)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오는 31일(토) 호주와의 결승전만을 남겨놓고 있는 현재까지 5전 전승 무실점으로 승승장구 하자 벌써부터 2002 한일월드컵 4강을 이끈 거스 히딩크(69·네덜란드) 감독의 업적과 오버랩 되며 이들을 벤치에 앉힌 이용수(55)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의 숨은 공도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이용수 위원장은 지난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숨은 공신이었다. 막 40대에 접어든 지난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직을 맡아 히딩크 감독 영입 후 환상적 호흡을 맞추며 한국 축구사에 큰 획을 그었다. 대한축구협회는 그런 그를 지난해 7월 기술위원장 자리에 다시 앉혔다. 2014 브라질월드컵 실패 후 환골탈태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용수의 손에서 시작된 역사들
‘대수술’의 집도를 맡은 이용수 위원장은 빠른 판단과 추진력으로 수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취임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새 사령탑은 외국인 감독이 돼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기술위원 등과 함께 1박 2일 밤샘 토론을 벌여 얻어낸 결과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해외 감독 풀(pool)이 갖춰졌는지, 어떠한 기준에 우선순위를 둬 선임할 것인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명확하게 밝히며 그간 쌓여왔던 불신이란 묵은 때를 벗겨냈다. 협상 우선순위를 결정한 뒤부터 부지런히 움직였고, 수 많은 후보군 중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했다. 그리고는 “헌신 각오와 열정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며 그를 선택한 배경을 명확히 밝혔다. 이름값에선 다소 떨어졌지만 이용수의 선택이었기에 ‘믿고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용수의 선택은 옳았다. 이 위원장이 슈틸리케 감독을 골랐던 과정처럼, 슈틸리케는 학연 지연 등에서 탈피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선수들을 지켜봤다. 그 과정을 통해 손흥민(레버쿠젠) 기성용(스완지시티) 구자철(마인츠) 등 기존 대표 선수들은 재신임을 받았고, 차두리(서울)가 복귀해 2002년 4강 DNA를 심어줬다. 이정협(상주) 김진현(세레소오사카) 등 갯벌 속 진주들은 뒤늦게 빛을 봤다.
●4강신화…이용수는 취해있지 않았다
이 위원장에게 이번 아시안컵 성과가 더 특별하고 더 기쁜 이유는 또 있다. 2002 월드컵 직후 자신이 도입한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크게 한몫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축구인들이 4강 신화에 취해있던 2002년, 이 위원장은 10년 뒤를 내다보고 우수선수의 해외유학 프로그램 도입을 강력히 추진했다. 당장의 성과를 위한 근시안적인 프로젝트에 익숙했던 축구협회에서도 이 뜻을 받아들여 2002년 10월 양동현(울산) 이용래(안산)등 5명의 1기생을 프랑스(FC메스)에 보낸 것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포르투갈(SC브라가), 브라질(팔메이라스), 잉글랜드(레딩FC, 볼튼FC, 왓포드FC), 독일(함부르크, 뉘른베르크) 등으로 총 29명의 선수에게 ‘축구 조기유학’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 위원장의 선택은 여기서도 맞아 떨어졌다. 잘 갖춰진 프로그램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떡잎들은 하나 둘씩 열매를 내놓기 시작했다. 유학 프로그램 3기생으로 선발돼 프랑스 FC메스에 다녀온 조영철(카타르SC)은 오만과의 1차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고, 5기생으로 선발돼 잉글랜드 레딩FC에 유학을 갔던 남태희(레퀴야SC)는 쿠웨이트와의 2차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연장전 두 골을 몰아넣은 손흥민은 마지막 기수인 6기생으로 선발돼 독일 함부르크에 유학을 다녀왔다.
당시 해외유학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대한축구협회 손성삼 등록팀장은 “제도 초반에는 학원축구에 익숙한 선수의 부모들이 해외 유학을 꺼려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 위원장은 기수별로 1명씩만 대표팀에 들어와도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해 제도를 정착시켰다”고 전했다.
●이용수표 10년 대계, 일 낼까
이 위원장이 도입한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은 지난 2010년에 폐지됐다. 기회의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대로 보면 이 제도 도입 당시 해외 유학을 꺼려하던 학부모들이 앞다퉈 참여시키고 싶은 프로그램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회 초반 한국에 머물던 이 위원장은 지난 8강전을 앞둔 22일 호주 현지로 날아가 묵묵히 감독과 선수단을 지원하고 있다. 현지에서도 이 위원장은 이번 대회 성과에 대해 무척이나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내세우지 않아도 결과가 대신 말해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이 위원이 선임한 감독과, 그가 추진했던 10년 대계 프로젝트가 어우러져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란 달콤한 열매로 돌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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