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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무인구(無人區)가 남아 있기를...

입력
2015.01.3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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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한참 다니던 시절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모르는 세계가 너무 많았고 발 디뎌 보지 못한 공간의 무한한 영역이 호기심과 설렘을 자극했다. 늘 가보지 못한 그 곳의 햇빛과 공기가 궁금했다. 종의 기원의 저자로 유명한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에서 “청년기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비둘기의 종을 따라 연구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주 오래 전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열심히 독파했지만 지금 기억나는 구절은 그것 뿐인걸 보면 ‘비둘기의 항해를 따라 세계나 여행하면서 비둘기의 종류를 연구하는 삶’이 얼마나 근사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시와 연극에 경도된 나머지 이십대엔 취업보다 배낭여행에 더 빠져 지냈고 이 십여년 동안 여기 저기 수백 개 도시들을 경험했다. 일년에 몇 개월씩은 낯선 길 위에서 지도를 든 채 보내곤 했다. 생각해보면 내 여행의 대부분은 길을 잃고 지도를 든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들에 다름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해지는 무렵의 풍경들에게 나는 이름을 아직 다 붙이지 못했다. 녹음기를 꺼내 저녁 수도원의 종소리를 녹음하던 허량한 나는 외로워질수록 세계로 깊이 들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 여행이나 오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볼 때 좀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프로그램의 예고편은 ‘이제 지구상에 인간의 발길이 닿지 못한 지역은 없다’고 자신들의 탐험정신을 광고하는 영상을 내보낸다. 그들의 개척정신(?)은 추종을 불허할 만큼 첨단의 카메라와 자연을 지배하는 서바이벌 방식을 자부심으로 드러내고 있다. 마치 이름없던 자연이 그들에게 하나 둘씩 들통나고 있으며 인류가 깃발을 찍고 세간을 들이기만 한다면 인간의 영역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세계의 오지를 뒤적거리고 있다. 무인구는 인간에게 오는 길을 쉽게 내어 주지 않았지만 돌아가는 길은 쉽게 잃게 만들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못한 지역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저 단언에서 오는 씁쓸함은 무엇일까? 저 말뜻을 헤아려보면 어렵지 않게 인간은 자기 몰락에 매료 당하고 있다는 것을 통찰할 수 있다. 수 천년 동안 인간의 흔적을 지우고 새들만이 오고 가는 금단의 땅이라 불렸던 곳들이 점점 여행관광지가 되고 연예인들의 서바이벌 쇼 프로그램의 소재가 되고 있다. 여행의 진실은 각자가 생각하는 미지에 대한 깨달음과 닿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척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으로 인해 무인구가 점점 사라진다는 사실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자연도태 되지 않고 최적자만이 생존한다는 종의 법칙(다윈)에 의하면 인간은 물갈퀴가 있는 발로부터 진화해 왔다. 그 사이 자연 역시 인간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흔적을 지우고 숨어 왔다. 때로는 자연은 인간 속에 숨어 은거를 마련해 왔다. 무인구는 수 천년 동안 여행지로서보다는 두려움과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자신을 보살펴온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유전공학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에서 자연은 태어나고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극기’와 진실의 여정을 위해서라도 나는 인간의 발길이 아직 닿지 않는 지역이 좀 더 남아 있었으면 한다.

무인구는 여전히 내게 신비스러운 공간이다. 인도의 라자스탄이나 제3의 극이라 불리는 티벳의 고원이나 창탕 지역, 운남성의 옥고촌, 메리설산이나 하바 설산등은 인간의 호흡이 없었던 곳에 닿는 경험을 준다. 그곳엔 불가항력의 인간사로 여겨졌던 것들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버린다. 지난하다고 여겼던 삶은 가여운 것에 불과해진다. 인간의 숨보다 다른 종류의 폐활량에 정신이 가득 차오르기 때문이다.

분명, 이 세계는 지루하다. 세상은 움직이고 있고, 난 여전히 바깥을 경험하고 싶다. 좁은 공간에선 금방 말이 세어 나가니까. ‘이 친구 혼자만 모르는 눈치군’ 이라는 말을 듣는 다는 것은 어쩐지 외로워지는 구석도 있으니까. 오지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의 땅을 말한다. 오지는 인간의 내면 가장 안 쪽에도 존재한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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