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아시안컵 한국과 호주와의 결승전을 하루 앞둔 30일. 온라인 여론 조사 기관인 PMI가 국내 20~50대 4,00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호주 아시안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을 실시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손흥민(23ㆍ레버쿠젠ㆍ16.9%)과 기성용(26ㆍ스완지시티ㆍ14.3%)이 아닌 ‘차미네이터’ 차두리(35ㆍFC 서울ㆍ22.3%)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차두리에게 최고의 선수라는 ‘훈장’을 안긴 것이다.
차두리가 국가대표 고별전을 치른다. 그는 31일 오후 6시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개최국 호주와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다.
이번 대회에서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출전해 폭발적인 스피드와 돌파 능력, 육탄 수비까지 보여준 차두리는 1960년 서울 대회 이후 55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기겠다는 각오다.
차두리는 이번 대회에서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했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 역대 아시안컵 최고령 출전자인 그는 22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 연장전에서 60m 가량 폭풍 드리블을 한 뒤 손흥민의 추가골을 배달했다. “저런 선수가 왜 브라질 월드컵에서 해설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방송 해설자의 말은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차두리의 인생에서 축구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불세출의 영웅’ 차범근(62) 감독의 아들인 그는 198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분데스리가를 주름잡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축구와 접했다.
차두리는 1998년 축구 때문에 펑펑 울었다. 당시 프랑스 월드컵 지휘봉을 잡았던 차 감독이 거스 히딩크(69) 감독이 이끈 네덜란드에게 0-5로 지면서 조별리그 도중 경질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차 감독은 “온 집안이 지옥 속에 가라앉은 듯 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가 최고의 자리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진 모습을 본 차두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깜짝 발탁 됐다. 아버지에게 수모를 안긴 히딩크 감독은 고려대와의 연습경기에서 차두리의 저돌적인 모습을 보고 대표팀에 승선시켰고, 그는 2011년 11월 세네갈과의 A매치에서 감격스러운 데뷔전을 가졌다. 아버지의 후광 때문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실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차두리는 이후 승승장구 했다. 유럽 리그와 대표팀을 오가며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측면 공격수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꾼 뒤에도 변함없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차두리는 태극마크를 달고 14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아시안컵은 세 차례, 월드컵은 두 차례 경험 했다. A매치 74경기에 출전해 4골을 뽑아내며 축구팬들에게 그의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차두리는 사실 지난해 국가대표 은퇴를 준비했다. 하지만 울리 슈틸리케(61ㆍ독일) 감독이 차두리를 설득해 이번 아시안컵까지만 뛰기로 했다. 그는 대회 기간 취재진과의 대화나 기자회견을 피했다. 후배들보다 자신의 은퇴 관련 소식이 주목을 받는 것이 싫었다. 오직 경기장에서만 모든 것을 쏟아냈다.
후배들은 호주를 반드시 꺾고 대선배에게 우승을 선물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수비수 김창수(30ㆍ가시와 레이솔)는 “다들 두리 형이 은퇴경기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자고 뜻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공격수 이근호(30ㆍ엘 자이시)는 “우리 팀에서 두리 형의 비중은 경기장 밖에서도 엄청나게 크다. 그 고마움을 후배들이 운동장에서 더 열심히 뛰어 보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띠 동갑 선배인 차두리를 ‘삼촌’으로 부르는 손흥민은 “제가 정말 기대는 선수가 삼촌”이라면서 “삼촌이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기 전에 꼭 좋은 선물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정들었던 국가대표 유니폼을 반납해야 하는 차두리는 담담하게 결승전을 준비하고 있다. 아들 고별전을 지켜보기 위해 차두리의 부모님도 경기장을 찾는다.
차 감독은 “두리가 마지막 경기를 한다고 하니까 가족이 구경을 왔다”면서 “잘 해서, 우승을 하고 은퇴했으면 좋겠다”고 아들을 격려했다. 현장에서 부모님의 응원을 받게 된 차두리는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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