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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인성교육'이라 쓰고 '영어수업'이라 읽는다?

입력
2015.01.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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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인성교육 강화 내세우지만 초·중 교사들 "현실 아는지… " 냉소

지난해 서울 S중학교의 ‘학교폭력 예방교육’ 시간. 영어 교사가 교실에 들어와 칠판에 ‘인성 교육’이라고 적고는 영어 듣기 수업을 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연간 두 시간 의무 편성됐지만 눈 앞의 입시에 밀린 것이다. 이 학교 생활지도 교사는 “교육부에서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학교폭력 예방교육’, ‘학부모와의 대화’, ‘또래 상담’ 등을 하라고 하지만 대부분 고등학교 진학에 필요한 수업으로 때운다”고 말했다.

서울 K초등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10월 2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인성교육 주간’에 학교 홈페이지에 다른 학생들을 칭찬하는 댓글을 단 뒤 화면을 캡처해 학교에 제출했다. 학생들이 이 기간 동안 참여한 인성교육 관련 활동은 ‘바른말ㆍ고운말 쓰기’, ‘효 실천 수기 작성’, ‘선플 달기’ 등 5~6개에 달한다. 이 학교 인성교육 담당 교사는 “교육 당국이 인성교육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이벤트성 활동이 대다수”라며 “‘얼마나 인성 교육 활동을 많이 했느냐’로 인성교육의 성과를 평가하기 때문에 사실상 보고용 활동”이라고 토로했다.

29일 엄상현 단국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한국교육개발원에 제출한 ‘초등학교 인성교육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교사들은 학교 현장의 인성교육에 대해 냉소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가 최근‘2015년 업무계획’을 밝히며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 교사들은 “지금까지의 인성교육도 부실하다”,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인성교육 강화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 연구는 경력 10년 이상 교사 중 인성교육에 관심 있는 서울지역 7개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으로 진행됐다.

교사들은 인성교육의 개념조차 혼란스러워 했다. A초등학교 교사는 “인성교육의 목표라는 게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인격을 도야하고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인데 너무나 추상적인 내용”이라며 “과학에서는 오목거울이나 볼록거울을 가르치면 되지만 인성교육은 정작 뭘 가르쳐야 할 지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F초등학교의 인성부장교사는 “인성 교육 개념을 정립해 놓은 게 없어 결국 과거처럼 포괄적 지도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교육도 형식적이다. D초등학교의 문예체육부장교사는 “시간ㆍ노력의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학교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안 할 수도 없다” 고 털어놨다. B초등학교 인성 부장교사는“인성교육과 관련해 ‘선생님들 이런 게 왔습니다. 잘 알아서 하시고, 보고를 해야 하니 최소한의 것만 지켜주세요’라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3년 12월 발간한 ‘초ㆍ중등학생 인성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인성교육이 계획대로 시행되고 있다’고 답한 학교는 전국 초ㆍ중ㆍ고 575개 학교 중 253개교(44.8%)에 그쳤다.

중ㆍ고등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 서울의 H고 교사는 “학교가 1년에 34시간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으로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지만 교육당국은 성폭력 교육, 안전 교육 등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 시간에 편성하라고 해 새롭게 인성교육이 들어갈 틈이 없다”고 말했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 맺기 속에서 인성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교사들은 교육 당국이 요구하는 갖가지 활동과 보고서에 바빠 정작 학생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인성 교육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았고, 입시에 밀려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며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인 인성교육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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