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만들기보다 없애기가 더 어려워
보통 좋은 향으로 안 좋은 냄새 가려
연쇄살인을 저지른 18세기 프랑스의 후각 천재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이야기를 다룬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그르누이가 13명의 여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재현하려 했던 향은 다름 아닌 인간의 체취다. 강렬하게 이끌렸던 기억 속 여인의 냄새를 갖고 싶다는 그르누이의 욕망은 그러나 실현되지 못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기술로는 천연향을 100% 똑같이 만들어낼 수 없다. 거의 모든 향이 다양한 성분의 조합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구조가 밝혀지지 않은 성분들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일조량을 비롯한 기후의 영향으로 천연향료 자체도 향의 강도나 향 성분별 농도가 시기마다 달라진다. 때문에 산업계에서 천연향으로 통용되려면 국제표준화기구(ISO)나 국제향료협회(IFRA)가 정한 기준에 맞게 제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라벤더오일은 주성분인 린나룰을 30~40% 함유하고 있어야 라벤더향 원료로 인정받는다.
원료의 산지나 향 성분 추출법에 따라서도 천연향료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장미오일은 장미가 터키산이냐, 불가리아산이냐에 따라 성분이 차이 난다. 장미꽃을 증류해서 직접 뽑아낸 향료는 장미오일, 핵산이나 에테르 같은 화학용액에 넣어 추출한 향료는 장미앱솔루트라고 불린다. 천연향료가 진품인지를 가릴 때 산지나 추출법을 확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합성향료는 천연향료와 달리 구성 성분의 비율이나 물리화학적 특성이 거의 일정하다. 산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합성향료들의 상당수는 원료가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생활용품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은 대개 천연향료와 합성향료들을 적절히 배합해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향은 사실 만드는 것보다 없애는 게 더 어렵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좋은 향으로 안 좋은 냄새를 가리는 마스킹 기법이다. LG생활건강 윤동선 선임조향사는 “비누를 만들 때는 유지와 알칼리성분이 불순물과 어우러져 특유의 안 좋은 냄새가 나는데, 이를 가리기 위해 향 성분을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또 성분에 다른 물질을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냄새가 나지 않게 만드는 중화법, 항균력 있는 향료 성분으로 냄새를 일으키는 균을 죽이는 생물학적 기법 등도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식당에서 나올 때 옷에 흔히 뿌리는 냄새제거제에는 물리적 기법이 동원된다. 고리 모양 구조를 가진 물질이 냄새 성분을 가둬 놓고 못 움직이게 해 냄새가 나지 않도록 차단하는 원리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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