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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길 위의 이야기] 기다리다

입력
2015.01.2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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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데 이웃집 아이가 보였다. “방학인데 왜 나와 있어?” “할머니 기다려요. 오늘 오신다고 했어요.” 얼마나 좋은지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져 있다. “언제 오신다고 했는데?” “저녁때요! 지금 저녁이잖아요.” 쾌재를 부르며 아이가 환히 웃었다. 할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근데 왜 여기서 기다려? 방에 들어가서 기다려도 되잖아.” “방에서 기다리면 기다렸다는 걸 모르잖아요. 실은 할머니가 오자마자 보고 싶기도 해요.” 아이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A가 B를 기다릴 때, B는 A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A 또한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B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일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나 기다릴지도 모를 이를 찾아가는 사람에게나 애가 끓고 타고 녹는 일일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슈퍼에 가러 밖에 나왔는데 아이는 아직도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풀이 죽은 상태였다. 어떤 말을 건네기도 뭐해서 별수 없이 슈퍼로 발길을 돌렸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데 아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방방 뛰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내 할머니가 오신 것이다. 기다림이 끝난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니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가장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만들어진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림은 결코 정지해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므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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