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유학길 해골물 설화 수도사
약사여래불상 모셔진 흥국사
지팡이로 약수 뚫었다는 원효암
미녀의 유혹 설법으로 떨쳐낸 자재암
경기도 사찰 곳곳에 고승의 흔적
순례길엔 가르침 좇는 발길 이어져
이 땅에 불교를 안착시키는 데는 신라 원효대사(617~686)의 공이 컸다. 불교 대중화를 이끌었던 원효에 대해서는 요석공주와의 사랑이야기와 함께 깨달음을 얻은 해골 물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40대의 승려 원효는 661년(문무왕 1년)에 승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 서라벌에서 출발한 이들은 당나라로 향하는 뱃길이 닿는 당항성(지금의 경기 화성시 서신면)으로 향했다. 당항성에 다다를 무렵 이들은 비를 만나 바위굴을 찾아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원효는 밤에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어 보니 바가지에 물이 들어 있어 시원하게 마셨다.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 물을 마시던 바가지가 해골인 것을 알고 구토를 하고 말았다. 이에 원효는 진리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 바위굴은 어디쯤 있는 걸까.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신 곳은 경기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부근으로 전해진다. 이곳에 수도사라는 작은 절이 하나 있다. 해군 2함대 사령부 옆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한 사찰이다. 현재의 수도사는 절이 처음 창건(852년)됐을 당시보다 100m 가량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절터는 해군 2함대 사령부 내에 있어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다.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는 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말했다는 ‘오도송(悟道頌)’이 걸린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가지가지 법이 생기고/마음이 멸하면 해골이 묻혀 있는 무덤과 다르지 않네/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또한 앎에 기초한다/마음 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
현수막을 제외하고는 원효의 행적을 찾을 만한 유적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절 내부에는 후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탑과 석물만이 어지러울 정도로 이곳 저곳 흩어져있다. 한 신도를 잡고 물어 보니 대웅전 법당 안에 원효가 해골 물을 마시고 있는 탱화 한 점이 유일하단다. 원효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 ‘오도성지’로 알려진 수도사에 고작 탱화 한 점이 유일한 유적이라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평택시와 수도사는 원효대사 오도성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조만간 토굴에서 직접 원효의 행적을 체험해볼 수 있게 된다.
원효의 행적이 많지 않음에도 수도사에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이 사찰음식과 템플스테이로 유명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효가 깨달음을 얻은 ‘오도성지’를 직접 보기 위한 순례자들도 상당수다. 원효는 신라불교의 전성기를 연 불교철학자이자 대사상가, 240여권의 저서를 남긴 저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다툼을 화합해 하나로 통하게 한다’는 화쟁사상과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무애사상 등 대사의 가르침이 종교를 떠나 어지러운 현 시대에도 크나큰 가르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의 원효대사 성지를 순례 중이라는 최혜정(32)씨는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다 원효의 사상에 심취하게 돼 결혼 후 틈틈이 전국 49곳의 원효대사 성지순례를 했는데 수도사가 마지막 일정이다”면서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원효의 가르침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원효대사가 수행을 하거나 창건한 절은 남한에만 100여 개가 넘는다. 현재 경기도에 원효의 행적이 남아 있는 절과 암자 가운데 경기관광공사가 10곳을 엄선해 ‘길 끝에 놓인 행복을 따라’라는 제목으로 ‘경기도 원효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원효 성지는 전체 10곳 중 6곳이 고양과 안양에 몰려있다. 우선 고양에는 흥국사와 원효암, 상운사가 원효대사와의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한미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흥국사는 원효가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해인 661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북한산에서 수행하고 있던 그는 어디선가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따라 와보니 돌로 된 약사여래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원효는 탄복해 이곳에 절을 창건해 처음에는 흥성암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원효가 약사여래불상에 탄복해 지은 절이어서 흥국사 본전에는 석가모니불 대신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북한산에 자리잡은 원효암은 원효가 수행을 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작은 암자라 사찰 입구에 바로 대웅전이 붙어있고 바위능선 사이 길게 형성된 절개지를 따라 산신각까지 길이 이어진다. 대웅전 한쪽에는 원효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대웅전에서 산신각으로 이어지는 암벽에는 원효가 지팡이로 뚫었다는 약수물이 나온다. 산신각 내부에는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원효가 앉아 수행했던 바위라고 한다.
안양에는 삼막사와 염불사, 망해암이 원효와 연을 맺고 있다. 관악산 기슭에 있는 삼막사는 원효와 의상, 윤필 등이 막사를 치고 수도를 했고 그 뒤 이곳에 원효가 절을 짓고 삼막사라고 칭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서울 주변 4대 명사찰 중 한곳으로 꼽히던 곳이다. 염불사 역시 원효와 의상, 윤필이 수도를 하며 창건한 곳이다.
망해암은 안양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관악산 줄기의 야트막한 산 정상에 있다. 원효가 처음으로 미륵불을 봉안하고 망해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삼막사, 수도사와 함께 경기도의 대표적인 원효대사 관련 사찰이다. 3m 높이의 석조미륵불이 있는 망해암에서는 바다처럼 펼쳐지는 안양시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동두천 상봉암동의 자재암 역시 원효와 얽힌 일화가 많다. 원효가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아름다운 여인이 유혹을 해 설법으로 유혹을 물리치고 보니 그녀가 관세음보살이었다고 한다. 자재암 나한전 바위틈에서 나오는 샘물은 일년 내내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데 원효대사가 처음 마신 샘이라고 해 원효샘으로 불린다. 이 원효샘은 찻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였다고 한다. 고려 후기 문신 이규보가 이 샘을 일컬어 “젖같이 맛있는 차가운 물이다”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의정부 호원동의 원효사, 여주 천송리 신륵사 역시 대표적인 원효대사 순례지 중 한곳이다.
경기도 원효 성지 순례 코스는 각 사찰마다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원효대사의 사상까지 한꺼번에 배울 수 있다. 종교를 넘어 1,400년 전 ‘참행복’을 찾았던 원효대사의 족적을 따라가는 여행길.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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